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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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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마주한다.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 일한다는 건 이런걸까? 함께 일하면서 경험으로 보여주지 않았으면서 내 경험을 존중받고 싶었던 나를 보았다. 그동안 트레이너로서 자부심은 곧 다른 영역의 사람들의 지적과 비판을 넉넉하게 받아들 수 없는 상태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난 지적을 받자 곧 자존감이 떨어졌다. 얼마나 쉬이 흔들리고 납작해지던지. 그런 불안정한 나를 보았다. 그동안 흔들리던 후배들에게 했던 코멘트가 얼마나 경솔했던 것이었나를 절실히 깨달았다. 나의 조언들은 그야말로 가짜였다. 난 그들의 아픔을 제대로 겪어보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서야 목표지향적인 사람과 일하는 게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목표지향적이었으나 경험으로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었는지를 알고 놓아버린 지금에서 가치관이 바뀐 상태) 동기부여가 되지 않은..
혼돈과 자극 정신이 없다는 건 바로 이럴 때다. 엄마가 하루이틀 아픈 것도 아닌데 작은 수술 하나에 왜 이렇게 내가 흔들리는가. 역시나 마음의 문제였다. 다시 억울해지고 분노하다니. 나도 아직 멀었다. 결국 그 분노감은 나를 죽이는 일이었다. 무기력하고 열이나고 아프다. 도대체 이렇게 힘들어할거면서 그동안 잘난척은 다 뭐란 말인가. 그래서 정신을 차리기로 한다. 1. 엄마는 심각한 상태가 아니니 한달을 견디자. 2. 교육을 줄이고 틈틈이 엄마와의 밤 데이트를 즐기자. 3. 엄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엄마는 나에게 예수이지 않았던가. 4. 의지할 곳이 없어 방황하지 말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5. 일단 중지하자. 학원은 미뤄두자. 급한게 아니니. 6. 우선 약속된 건강생태계사업에 집중하자. 그리고..
괜찮다 이젠 때가 되었구나. 어른의 사랑은 적당히 이성을 작동하며 감정을 감출 수 있기에 친절하고 예의바르게 상대의 못마땅함을 지적할 수 있지. 실수가 예뻤던 날은 지나가고 연락이 닿지 않으면 반복해서 집착하던 날도 지나가고 눈비비며 저녁을 먹을 때도 웃음은 멈출 수 없었던 날이 지나가고 커피숍에서 기다리던 시간은 짧아졌다. 애써 감지된 상황을 외면한건 어차피 찾아올 날을 걱정하며 생각에 관계를 가두고 싶지 않아서였다. 내맘에 핑계가 자라나고 네맘에 서운함이 사라지고 기대와 설렘이 사라지고 화내는 일이 없어졌다. 만나면 따뜻하게 시간시간을 소중하게 여유있고 애틋하게 그리고 비로소 떠날 때가 되었을 때 난 괜찮다. 라고 말해야겠다. 나이가 들어도 이별은 아프지만 미워하지 않으면서 이별할 만큼 난 자랐다. 나의 점..
감정의 쓰레기통 난 어제 주민들과 관계에서 고민하고 있는 실무자에게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어줄 만큼 나는 여유있고 넉넉한가?를 성찰하라고 주문했다. 역시 경솔했다. 매번 교육장에 들어서기 전 습관처럼 주문한다. 경솔하지 말자고. 난 곧 후회했다. 누군가의 고충을 들으면서 난 들어주기보다 분석하고 조언하려 했기 때문이다. 뒷통수가 따갑다. 그리고 봄비가 내린다. 난 봄비를 느끼려고 작정(?)했으나 일을 주문하는 전화 한통화로 산통이 깨졌다. 이내 무거워졌다. 도대체 생활에 활력이 있을만한 정도이 일은 얼마만큼인가. 며칠전만 해도 발걸음이 가볍던 일상이었는데 조울증처럼 갑자기 무거워지고 지치다니. 어느정도를 담아야 적당히 심심치 않으면서 먹고살만큼 생활비를 벌면서 일상을 느긋하게 보낼 수 있단 말인가. 나이가 들면서 욕심..
겨울을 견뎌야 하는 이유 너무 좋은 것은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냥 너무 좋다. 바람이 아닌 햇살의 스킨쉽을 느끼며 걸을 수 있는 봄날이 오고야 말았다. 아. 좋다. 지난 몇년동안 이런 봄날을 그냥 보내버린 듯 한데 오늘은 오롯이 즐길 수 있어서 좋다. 역시 사람은 그릇에 맞는 양의 일을 해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보다. 교육이 없는 날은 이렇게 광진교를 걷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지 않으며 요가를 할 수 있고, 보고 싶었던 사람을 골라서 만난다. 고슴도치처럼 달라붙어서 깽깽거리던 관계를 벗어나 그리운 이들을 만나 적당한 담소를 나누고 맛난 음식을 먹고 안부를 물으며 다소 가치적인 대화를 주고 받으며 지적허영도 좀 채우고, 관계의 허영도 좀 채우고 며칠을 보내니 기운이 난다. 겨울내내 오그라들었던 마음도 펴고 축축했던 관계를..
만나서 좋은 이유 13회 서울장애인영화제에 참석했다. 일반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와는 다른 특별한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다. 보통사람으로 사는 것이 왜이리 힘든지. 결혼, 그도 아니면 연애, 그도아니면 사랑고백이라도 아니, 손잡고 드라이브라도 했으면 하는 바람. 신발가게에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 자연스레 시발을 고를 수 있으면 하는 바람. 하다못해 편의점 알바가 소비자 대접해주길 바라는 바람. 비장애인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지만 장애인에게 언감생심이다. 장애인권 감수성은 장애인이 아니면 충분히 가질 수 없으나, 만남을 통해, 영화를 통해 공감하고 교류하면서 채워지는 것 같다. 멀어졌다 싶을 때 영화제는 다시금 감수성을 챙기는데 도움을 준다. 특히, 장애인의 휠체어 눈높이 카메라와, ..
쉼. 자유와 불안 5년 동안의 상임트레이너를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조직안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과 고정적인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안정감은 나를 성실한 자로 만들어 주었다. 위험성을 무릅쓰고 개척할 일도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을 일도 없이 지내다보니 나는 그 틀을 벗어나서 홀로 설 수 없게 되었다. 조직의 바깥에서 선안으로 들어오니 이제는 그 중심으로 자꾸 나를 밀어넣고. 본의 아니게 나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남들이 기대할 수록 나는 부담스러워졌고. 동시에 기대에 부응하려 참고 인내하는 나는 점점 욕심쟁이가 되어갔다. 욕심을 내려놓기로 했다. 안정과 소속감을 벗어놓고 떠나기로 했다. 불안하고 달콤했던 지난날이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권력화되어가는 나를 이때가 아니면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찾는이가 많을..
그런사람 그런사람 사회적 모멸을 딛고 서있는 사람과의 대화는 즐겁다. 치유를 고민할 것도 애써 경청의 각을 잡을 것도 상처를 염려할 것도 없이 단도직이벅으로 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통과 좌절에 담금질 당했던 사람과의 대화는 따뜻하다. 버거운 의존이 사이를 가로막지도 얄팍한 우월감이 나의 품위를 저해하지도 수용하느라 지치지 않고 존경의 기운으로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안과 두려움을 고독하게 소화해본 사람과의 대화는 편안하다. 시끄럽게 오버하지도 침묵으로 단절하지도 분열적인 모습을 견뎌내지 않아도 그저 함께 자리하는 것만으로도 내몸의 감각이 긴장을 풀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을 알아보고 그런 사람을 만나고 그런 사람과 대화하고 그런 사람과 도모하고 그런 사람을 아껴가며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