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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기

만나서 좋은 이유

13회 서울장애인영화제에 참석했다.

일반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와는 다른 특별한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다.

보통사람으로 사는 것이 왜이리 힘든지. 결혼, 그도 아니면 연애, 그도아니면 사랑고백이라도

아니, 손잡고 드라이브라도 했으면 하는 바람. 신발가게에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 자연스레 시발을 고를 수 있으면 하는 바람. 하다못해 편의점 알바가 소비자 대접해주길 바라는 바람. 비장애인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지만 장애인에게 언감생심이다.

장애인권 감수성은 장애인이 아니면 충분히 가질 수 없으나, 만남을 통해, 영화를 통해

공감하고 교류하면서 채워지는 것 같다. 멀어졌다 싶을 때 영화제는 다시금 감수성을 챙기는데

도움을 준다.

특히, 장애인의 휠체어 눈높이 카메라와, 시각장애인용 화면설명은 마치 다른 형식의 영화를

보는 듯한 새로운 느낌이었고, 난 그게 시각장애인용인지도 모르고 독특하고 재미지다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들을 만났다. 천호동서 쭈꾸미 먹기로 약속했는데

헛공약이 되고 말았다. 420 투쟁인 끝나고 나면 꼭 꼭 만나야지. 활동가들이 지치고 힘들때

교육으로 만났지만 우린 수다와 수다를 이어가며 재미난 시간을 보냈고 서로에게 위안이 되었다. 그래서 난 그들이 반갑고 그들도 내가 반가운 듯 하다. 꼬박꼬박 선생님이라 부르는 건 어색하다. 쭈꾸미 먹을 때 그냥 언니? 혹은 선배? 뭐 호칭을 변경해야겠다.

 

그리고 우땡이를 만나고 아땡이를 만났다.

아땡이는 여전히 어둡고 지친 얼굴이다. 농담처럼 한번도 밝았던 적이 없었다고 말하곤 하는데

방전된 에너지를 나눠쓰는 당사자야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나마 나를 놀려먹는 재미를 아는 아땡이에게 마구 놀림당하며 웃는다.

 

우땡이를 만났다. 우땡이는 고민이 분명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인데

관계에 얽힌 것이니 그저 잘난척하고 내이야기만 지껄인거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들어주지 못하고 성급하게 조언하는 나는 아무래도 직업병인거 같다.

내 가방을 탐내길래 손을 벌벌 떨며 주고, 현수막 가방에 내 짐을 담아 왔다.

역시 줄까말까 할때는 줘버려야 좋다. 맘도 가볍고 얻어먹은 짜장면도 두배로 맛나다.

 

채땡도 만났다. 그러고 보니 우땡 채땡은 모두 훈련생 아니던가.

훈련생과 트레이너로 만났지만, 이렇게 일상을 나눌 수 있으니 고맙고 또 고맙다.

 

그런데 왜 난 그들을 만나서 기분이 좋았던 걸까?

난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른다. 나를 만나면 어떤지도 모른다.

난 다만, 내 존재가 쓸모있다는 확인을 받는 듯 해서 좋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내가 그들을 정말 좋아하는가? 잘 모르겠다.

내가 힘들때 그들에게 의지하고 싶던가? 잘 모르겠다.

비밀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많은 만남은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관계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