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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마돈나 출간/러브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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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천호동 골목의 색바랜 무당깃발 그아래서 시간을 때우고 있는 늙은 여자어르신. 그 옆을 지나는 중년의 나. 그녀들도 한때는 이런 평탄을 깰 정도의 사랑을 해보았을까. 저 깃발아래 앉아서 멍하니 노을을 바라보면서 어디로 어느시점으로 돌아가고 싶은 귀소본능을 느끼는 걸까. 나만 보면 안아달라고 팔짝이는 복남이. 한참을 안고 털을 쓸어주었다. 살짝 고개를 내 팔뚝에 기대어 안도감을 느끼는 복남이가 처량하다. 누군가 애타게 찾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복남이는 시추. 옥탑방에 두고 나왔다. 어느 어미개가 구슬프레 운다. 혹시 저개의 새끼가 아니었을까? 복남이가 집에 온 이후로 난 자꾸 복남이를 생각한다. 길거리 개도 예사 개로 보이지 않고, 우는 어미개를 보면 복남이를 내가 훔쳐온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이상한..
#1 돌아보지 않던 몇년의 세월만큼이나 자개장농위에 수북한 먼지를 발견하니 소름돋는다. 돌보지 않는다는건 지저분한채로 방치한 사랑만큼이나 아찔하고 더러운기분이다. 의자를 올려놓고 팔을 최대한 뻣어 먼지를 쓱 쓸어내렸다. 먼지는 이제 원자가 아니라 두터운 지방만큼이나 덩어리져있었다. 빗자루에 뭔가 걸리는 느낌. 뭘까? 뭉툭하고 묵직한 덩어리가 걸린다. 쓰윽 밀어내니 노트한권이 툭 하고 떨어진다. 대학노트다. 20대 초반 희극도 비극으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절망의 에너지가 철철 넘쳤었다. 첫장을 펼치니 진하게 줄이 그어진 문구가 눈에 띈다. "평탄은 행복한 자기상실, 질투는 불행한 자기주장" 어느 철학자가 한 말을 메모한 것일까. 아님 관념적인 사고로 똘똘뭉친 지난날, 뇌리에 스친 멋진멘트가 생각나서 적어놓은 것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