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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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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바람이 분다. 건조하고 묵직한 바람이다. 가을을 맞이해야겠기에 습한 기운을 걷어내는듯 하면서도 여전히 한여름의 발목을 잡고 있는 묵직함이 느껴지는 이 바람. 참 좋다. 그 늦여름 바람을 후다닥 털어내고 버스에 올랐을 때. 까닭모를 고독이 밀려오고, 난 그 원인이 무엇인지 골몰히 집중하다 간혹 정거장을 놓치곤 한다. 사춘기 이후로 줄곧 그래왔던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원인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그바람이 나를 흔들었을 뿐. 지금도 그런 종류의 것임을 모를리 없다. 그래서 그냥 그 바람을 즐길 따름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 까닭모를 고독을 즐기는게 맞을지 모른다. 한국은 한겨울, 태국에 도착했을 때 오늘같은 바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마 난민 아이들을 돕는지 마는지, 나는 그 바람에 끌려 한주일..
맥도날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시급 4천원. 하루에 5시간 근무하면 2만원을 번다. 이런, 제길. 4대보험을 가입해야 한다. 공제하고 나면 한달 후 난 3십여만원을 손에 쥐게 된다. 가을옷 한벌 구입하고 미용실한번 가면 날라갈 돈이다. 노동이 정말 날 자유케 하려나? 액수와 상관없이 일하는게 즐겁다. 내 꿈이 하루 4시간 노동, 4시간 놀이, 4시간 공부, 나머지 잠인데. 몸이 피곤하니, 잠도 잘오고 살만하다. 부정한 생각들이 끼어들 틈이 없이 고단하다. 남아도는 기운으로 박스를 나르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잠시 빈 틈을 타 알바생들의 캐릭터를 분석한다. 프로페셔널의 냄새가 풍기는 김군은 나의 트레이너다. 일을 잘하지만, 다른사람의 어설픈 몸짓을 봐주지 못한다. 매니저 시험을 준비하는 김양은 적절..
장진영, 그녀가 죽었다 그녀가 죽었다. 난 그녀가 좋았다. 웃을때 환하지 않은것 울때 조차 슬픔에 빠지지 않는것 몸쓸감정들에서 거리두기 한듯한 눈빛 무엇보다 영화 '소름'에서 보이시했던 모습이 좋았다. 아무일 없는것처럼 돌아가는 세상에 다리걸기 하듯 담뱃재를 툭툭 털던 그 모습이 난 좋았다. 솔직히 죽음이 두렵다. 누구는 일찍 죽는게 소원이라고 하지만 난 벽에 똥칠할때까지 살고 싶다. 움직이고 느끼는 것을 잃는다는게 어떤 것인지 정말 두렵다. 그런데 웃긴건, 그녀의 죽음이 나를 이런저런 삶의 두려움에서 건져내고 있다. 어제까지 죽을거 같이 고통스럽던 각종 두려움들이 나풀대며 그 힘을 잃어버린거다. 가지려고 움켜줬던 것들이 죽음앞에서 얼마나 허망한지. 발가벗고 있어도 살아있음이 나를 얼마나 안도케하는지. 참 좋아했던 배우, 장진..
바람이 알아챈다 잠을 푹잤다. 이상타. 잠을 푹잘 정도의 정신상태가 아니었는데 어째서. 어제 마신 막걸리 두잔 때문일까. 바람, 때문이었다. 옥탑서 이삿짐을 싸고 나르는 동안 따가운 햇살에 힘들었지만 이상하게도 바람은 선선했다. 익숙해질만한 하니까 곧 이별이라니. 가슴이 쌩하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설렘과는 다른 심장박동이 빨라진달까? 우울한 징조다. 괜찮다. 슬프면 울고 푹자고 말끔해지면 되니까. 외로워서 자신과 사랑할 시간을 염두하지 않았으니 이제는 무슨일이 있더라도 외로워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아니지, 외롭더라도 그걸 고통으로 받아들여서 이상한짓 안하겠다고 다짐한다. 무수한 다짐들이 종이조각처럼 날라갈거라는거 알고 멍청한 고래처럼 작은 친절에도 슬픔이 휘발되는거 안다. 외로워서 저질렀던 많은 과오와 판단들. 그걸..
근황 간만에 글을 쓰니 낯설다. 2주간, 신나게 놀았다. 신나기보다 편하게 놀았다. 웃어도 웃는게 아니였단걸 이제서야 알았다. 양육의 부담이 없을때의 편안함이란 이런거구나, 하는 생각이. 단막극 대본을 하나 쓰고, 16부작 시놉을 하나 썼다. 피드백을 받아야 수정할텐데 아직 강사와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했으니.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으니 수줍어 하지말고 연락이나 함 해봐야겠다. 맥도널드 알바 지원을 했다. 아줌마를 구한다고 한다. 흠. 맘에 듦. 시급도 괜찮다. 그런데 연락이 없다. 포로이에 알바지원했다. 나이를 두어살 속였다. 연락을 준다더니 연락이 없다. 모니터링단에 지원했다. 설문지 100장을 받으면 20만원 준단다. 힛~ 인맥으로 갔으니 그건 되겄지. 강의 두시간 하고 15만원~20만원 받는게 얼마나 큰 ..
맨처음 친절 "강재씨가 제일 친절합니다. 저와 결혼해주셨으니까요" 파이란을 벌써 다섯번째 본다. 강백란이 보인다. 그속에 앤서니퀸을 맴돌던 젤소미나도 보인다. 한때는 바보같은 젤소미나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찐한 외사랑도 충분히 감동스럽다고. 하지만 그건 철저히 관객의 입장이다. 간만에 퍼즐을 맞춰봤다. 아귀가 맞는다. 내맘대로 맞춰왔던 1만피스. 오늘은 후루룩 단번에 맞춰진다. 훼이크도 읽힌다. 풋. 패러디에 속았군. 쓰리지만 현실은 날카롭다. 자아를 들여다 보는 최고의 도구는 '관계'다. 사람을 만나 관계하면서 겪는 감정들은 나를 충분히 해체하기에 적절하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그가 가진 고유의 타자성 때문이 아니라, 내가 조리한 타자성 때문이다. 누굴 만나든, 어떤 형태로의 변화는 겪는다. 토현이가 제주도로 ..
변화 이젠 새삼스럽지 않다. 사람들은 내게 용기있다고 하지만 난 무덤덤하다. 다만, 뭔가를 결심하기까지 약간의 망설임이 있을 뿐이다. 그 망설임은 진드기처럼 붙어있는 과거를 털어내는 약간의 용트림정도? 이내 생각한대로 행동할때 재밌어진다. 난 드라마작가 과정을 시작했다. 사람들과의 대화에 몰입하지 못하고 자꾸 시청자가 된다. 재미난 변화다. 세미나팀에 합류했다.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만나는 사람들이 편하다. 보조출연 알바신청을 했다. 나이많은 사람은 일이 없단다. 방청알바를 신청했다. 30대 후반의 여성이 환영받는 유일한 일자리. 뚱뚱하거나 못생기면 퇴짜다. 드디어 낼 첫 방청알바인데 퇴짜맞을지도 모른다. 기분은 더럽겠지만 좀 웃길거 같다. 온전히 몰입하지 않아도 되는 일자리를 가지려고 했으나 급여는 안정적이겠..
때가 왔다 억수로 비가 쏟아진다. 원피스가 비에 젖어 척척 감긴다. 그저 낭만적이기에는 생각이 많은 날이다. 난, 싸울준비를 한다. 감정적이어서 지기에 딱 좋은 내가 큰싸움에서 이겨본 경험이 있다. 그땐,내가 전적으로 옳았을 때다.(내생각이지만)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이지 못하더라도 철저하게 감정에 호소되는 지점. 머리굴리지 않고 버벅대면 버벅대는대로, 오해받으면 오해받는대로 질르는 지점. 그는 끝까지 굽히지 않았나보다. 심지어 자신이 구워삶은 사람들에게 조차 너무한것 아니냐는 지적에도 굽히지 않더니 결국 선배가 맥주잔을 던지고 사라졌다고 한다. '브라보' 이성적이지 않은 사람에게 이성적으로 접근하는건 과거사 청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제, 새벽까지 이어지던 술자리 소식을 들으며 내심 허망했었다. 결국, 난 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