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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하면 된거다.
광우병을 피하면 날씬해지겠지? 광우병 그러니까 우뇌해면증에 결린 미친소를 먹게 되면 사람도 비슷한 증세를 보인다. 위험음식은 다음과 같단다. 1.설렁탕 - 구수한 설렁탕은 이젠 안녕. 2.햄버거 - 이건 좀 참을만 한다. 3.라면 - 오늘 라면 3종을 구입했다. 너구리순한맛과 손칼국수라면에는 소고기분말이 없고, 국민라면 신라면에 소고기분말이 있다. 라면업체가 비영리단체로 전환하지 않고서야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미국산소고기를 쓰지 않으리란 보장 없다. 4.젤리 - 학교앞 문방구, 수많은 젤리형 불량식품을 어케 처치하지? 5.과자 - 도대체 뭔과자를 먹어야 하지? 여행갈때 뭘싸가냐고. 6.갈비탕 - 벌써 이별한 음식 7.스테이크 - 거의 안먹음 8.갈비 - 잔치상은 허접해지겠고 9.소고기맛조미료 - 미원의 대체조미료인 다시다여 안..
네트워크 네트워크는 수평적이다. 자기신원을 인지할 때 비로소 네트워크가 이뤄진다. 수직적인 연대와, 운동본부라는 이름의 집행대행체제의 연대체와는 다른개념이다. 사람들은 대개 개념을 가르지 않고 그저 요즘 유행하는 연대조직의 다른이름처럼 인식하고 있다. 통신분야에서 사용하던 경제용어였던 네트워크가 어느덧 운동조직의 방식으로 자리잡았다. 여하튼. 그 네트워크를 위해 난 졸린 눈을 비비로 나갈 채비를 했다. 양천구 목동. 서울의 동쪽 끝 강동구에서 팔계국장님과 함께 출발하여 서울 서쪽 끝 강서양천으로 향했다. 계획도시라 역시 깨끗하다. 일방통행 일색이라 처음 방문한 사람은 헤매기 일쑤. 바로 앞 건물을 두고도 한참 돌고 돌아야 한다. 계획도시는 어쩌면 이방인을 배척하려는 저의를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여기 사는 사람..
이렇게 늙어도 좋아 코넷 대표 이취임식을 준비하기 위해 실행위원이 모였다. 실행위원이래봤자 실은 다들 바빠서 참석못하고 시영이형과 경희언니 그리고 나 3명뿐. 그래서 성수역까지 친히 방문하셨다. 말안해도 통한다. 의견이 달라 싸우다가도 입을 틀어막으면 그만. 서로 이야기 하려고 중간중간 말을 자른다. 물마시듯 술이 술술 넘어간다. 취하지 않는다. 긴 토론, 긴 잡담, 긴 우정, 긴 사랑. 진보신당은 신진그룹의 발랄함에 당황하고 있을지 모를일이다. 그 안에서의 기득권을 향해 안전하게 착지하고 있는 이들이 또 기대하는 뉴페이스들에게 실망을 안겨줄지 모른다. 들어갈까 말까 고민이다. 비전을 세우는 것은 일원이므로 바깥에서 비판하는 부류는 되지 말자. 아니다, 지켜보는 것도 선택이다. 그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 주민운동을 하는 ..
앎의 실천 첫키스는 전혀 날카롭지 않았다. 근육이 분리된 다리는 맥없이 꼬이고 구름양탄자를 타고 어딘가를 향해 질주하는 기분. 도대체 남의 타액맛이란게 전혀 느껴지지 않는 무색소무설탕의 덤덤한 맛. 입끼리 부딪히는데 왜 입만 빼고 모든 근육이 작동을 멈추는 걸까? 행위의 단순함에 비해 몸과 마음은 요동을 쳤던 그 순간은 죽을때까지 경험하고 싶어도 할 수 없으리라. 덤덤하다 못해 "오늘 저녁에 무슨식사를 하셨나요?" 키스하다말고 묻고 싶을 정도로 여유를 찾으면 허전함이 몰려온다. 군입대 전 총깍딱지 떼준다고 여자애들 몰래 소근거리며 송별식 자리를 일찍 털던 사내아이들을 경멸하던 소녀가 어느덧 처녀딱지 떼지 못한 원죄를 괴로워하며 머리를 쥐어뜯는다. 그럴즈음 마구 분비되는 호르몬의 냄새를 맡고 하나둘 어슬렁거리며 사내..
정의-소유, 신-금, 신념- 우월성 모든 단어들 가운데 모든 말들 가운데 최초의 세가지는 바로 민주주의, 자유, 정의라네 정의는 벌을 주는 것이 아닐세. 정의란 각자엥게 걸맞는 가치를 되돌려주는 것을 말하네. 자유는 각자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닐세. 그것이 어떤 길이든 자네가 원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을 뜻하는 말일세. 민주주의는 다채로운 생각들이 적절한 합의를 보는 것을 말하네. 다수에게 좋은 것이며, 소수를 배제하지 않는 것일세. 진실한 여자와 남자들은 틀 최초의 언어인 이 단어들과 함께 걷고, 그들과 함께 투쟁하고, 그들과 함께 세상을 살아간다네. 우리의 위대한 조상들은 이땅을 정복하러 온 외국인들에게 맞서 대항해야 했다네. 그들은 우리에게 다른 삶의 방식, 다른 언어. 다른 신념, 다른 신, 다른 정의를 강요하기 위해..
식코-자본주의심장에화염병을던져라 sicko 아티스트웨이 투쟁일변도를 반성했었다.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며 나는 공적서비스가 미치지못하는 곳을 공동체가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치고 지랄이고 우리가 서로서로 기대어 행복하면 그만이라고도 생각했다. 자선도 늘고, 기업의 사회공헌도 증가했다. 그런데 폭탄처럼 사회적 이슈는 펑펑 터지고 우리는 대응할 수 없었다. 분노를 조직하려고 하면 자기일처럼 여기지 않거나 혹은 실패로 점철된 투쟁의 성과를 신뢰하지 않았다. 정부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도 미국사람처럼 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프랑스 사람들은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공적서비스 틈새를 애써 이웃끼리 만들어 내지 않아도 행복한 개인주의를 만끽 하고 살고 있었다. 빈부를 막론하고 누구나 건강권을 지킬 수 있었다. 어이없게도 ..
환하다 보여주려고하면 삑사리가 난다. 집회때의 마이크 공포증도 그런 종류다. 평상시 말만 잘하다가, 마이크만 잡으며 단어가 어려워지고 꼬이면서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하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예뻐보이려고 하면 불편하다. 후크는 배꼽을 파고들고 렌즈는 눈알을 마구 압박한다. 마스카라는 눈꺼풀을 주저앉히고 구두는 명랑운동회 내내 나를 주저앉혔다. 잘나가려고 하면 오히려 뒤처진다. 인생은 덤으로 얻어지는게 별로 없다. 본품에 추가구성, 거기다 덤까지 바란다면 건, 유통기한을 얼마 남기지 않은 것들일 가능성이 높다. 더욱더 잘하려고 하면 더욱더 초조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게 당연지사. 사람의 '의지'란게 얼마나 볼품없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