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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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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께 봄이니까, 뜬금없는 추억을 이해해주세요. 그러니까, 갑자기 오늘 밤 거리를 휘청이며 걷는데 당신생각이 나더군요.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과 막걸리 한잔을 걸치고 시끌벅적한 천호동 로데오 거리를 걸을 때였어요. 겨울에도 바람은 불었는데, 유독 여름을 앞둔 따스한 바람은 마음을 그렇게 후비는지요. 당신이 소리쳐 나를 부르던 그 천호동 사거리 말입니다. 그때가 언제였던가요? 아마도 2001년인가 그때의 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코뮨적 삶에 경도되었지요. 지역공동체활동에 온몸과 정신을 맡겨두고 살았드랬습니다. 적은 활동비 가운데 차비만 제하고 모두 적금에 붓는 살뜰한 주부이자, 아이의 엄마였어요.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해서인지 몸은 불을대로 불었고, 조기축구회 티셔츠정도나 몸에 맞을까, 처녀적 옷은 걸쳐보지도 못..
e채널 - 사랑5부작 - 1부 '권태' - 2부 '만남' - 3부 '그녀의 이야기' - 4부 '찬란한 사랑과 분리불안' - 5부 '좋은사람' 사랑의 시작부터 끝까지 간단하고 명쾌하게 정리했다. '사랑의 단상',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등의 책을 인용함. '랑그'와 '빠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난 얼마나 많은 '빠롤'을 사용하는걸까. 어긋난 소통이 반복되는건 내가 너무 심하게 '빠롤'을 사용하는지도 모르겠다. 은유하지 말고, 상대방이 내 가슴속을 훤히 들여다볼수 있도록 소통할수는 없을까. 1부에 삽입된 음악 (아리조나드림 OST에 사용된 이기팝의 인더데쓰카)은 내가 좋아하는 음악 상위 10%에 들어간다. 5부작을 다 보고나면 사랑이 시니컬해진다.
고백 철든사람 특유의 자기관리는 더 슬프다. 난 안다.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게 최선이라는 것을. 이건 얕은 쿨함과는 거리가 먼, 그러니까 인생의 경륜이 가져다 준 관계의 지혜에 더 가까운 것일 수 있다. 그에게 할부끊 게 할 수 없어서 오늘은 나의 감정을 말하고야 말겠다고 결심했다. 단 둘이었으면 좋았겠지만 회의를 마치고 가는 길이어서 본의 아니게 증인도 함께 자리를 했다. 동대문에 가면 북어포를 파는 슈퍼가 있다. 외형은 슈퍼이지만 실은 선술집이다. 여름에는 문닫힌 등산용품가게 앞에 파라솔을 펴고 밤샘 장사를 한다. 그러나 오늘은 추운 탓인지 몇평안되는 슈퍼안에 손님들이 옹기종이 모여서 술을 마신다. 마침 북한과 남한의 축구경기가 시작됐다. 한 테이블의 청년들만 관심을 가질 뿐 나머지 손님들은 그닥 관심을 ..
섹스도 호혜가 필요해 장자연이 죽었다. 시사인을 읽으니 불편하다. 아내의 유혹이라는 막장드라마와 비교해서 장자연이 복수극이라도 펼치듯 풍자하는 글이 맘에 걸린다. 그녀의 죽음이 섹스를 담보로 연예사업을 확장하는 우리사회의 풍토를 수면위로 드러냈다고는 하나 기자의 내면에는 장씨를 막장드라마 주인공 이상으로 취급하지 않았던것은 아닐까. 시사인 좀 실망이다. 남편은 결혼 10년이 지났지만 내가 반바지만 입고 있어도 손이 슬쩍 허벅지 위로 올라온다. 난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해왔다. 아직도 내가 그리 섹쉬한가?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을 정도였으니까. 감자탕을 끓이고 나면 온몸에 식재료냄새를 뒤집어쓰기 마련이다. 더구나 나는 지킬앤하이드다. 밖에서는 나름 스타일을 자랑하는 여인이지만 안에 들어오면 목늘어진 티셔츠에 눅눅한 채로 걸려있는..
인형의집'로라'를 만나다 안다. 헤어지는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글자 몇개 없고 명쾌한 그림으로 확실한 메세지를 전하는 그림책같은 삶은 없다는것을. 누구나 다 그러하듯이 나도 그들처럼 그러하게 살 수 없다는 걸. 그녀는 안다. 사랑하는 그를 만나고 용기내어 인형의 집을 나섰지만 누구도 그녀를 온전히 받아주는 곳이 없다는 걸 왜 모르겠는가. 다시 만난 그도 여전히 불안한 존재일 뿐, 그녀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따뜻한 사랑따윈 아니라는것을 그녀는 안다. 어쩌면 집을 뛰쳐나올때보다 지금이 더욱 어려울지 모를 일이다. 그녀가 지금의 그에게 가기까지 견뎌낸 파고만 하더라도 집채를 삼키고 남을 만큼 높고도 깊었으리라. 그녀는 또다시 이별을 준비한다. 떼어내도 감각없는 굳은살이 박혀버린 그녀의 심장. 쓸쓸하지만 그렇게 이별하고 또 만나겠지...
고해성사 크자비에르의 눈에 비친 프랑스와즈는 손아랫사람을 위한다는 핑계로 자신을 괴롭히는 악랄하고 가증스러운 어른, 그것이 크자비에라는 타인의 의식에 각인된 프랑스와즈의 이미지. - 사르트트와 보봐르의 계약결혼 중 - 크자비에르는 프랑스와즈와 계약결혼한 남자의 어린 애인이다. 보봐르와 올가의 관계와도 비슷하다. 보봐르의 계약결혼이란 소설을 읽으면서(소설이라기보다 자전적 에세이정도 될까?) 보봐르의 이중성을 감지했다.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올가를 아끼는가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지만, 불타는 질투심을 억제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크자비에르가 등장하는 소설을 쓰지 않았는가. 소설에서 프랑스와즈는 크자비에르를 죽인다. 소설은 가상현실을 가장하여 보봐르의 심정을 직설적으로 풀어낸다. 직업이 작가이니 가능했겠지만 솔직..
실연이란 텍스트 실연은 후에 찾아올 다른 사랑에 있어 강한 면역력을 키워준다. 이별에 눈물 훔친지 얼마 안되서 강하게 끌린 그를 만났을때 주체할수없이 달려가는 내 뒷목덜미를 잡아주는 것도 나만의 필터로 사람을 재단할 수 있게 돕는것도 만남의 색깔을 보정해주는 훌륭한 기능을 발휘하는 것도 바로 그 실연의 경험이다. 그 경험은 바로 사랑의 텍스트다. 그러나 그 경험은 억압적인 도덕의 질서보다도 더 강한 힘을 발휘한다. 관습보다도 더 강한 억압의 본질에는 '산을 산으로, 물을 물로' 볼 수 없도록 하는 멍청함에 있다. 실연과 배신은 관계에 있어 초연하고 고상한 태도를 일관할 수 있도록 하지만 속으로는 사랑과 소통을 방해하는 까망안경일뿐이다. 실연의 경험은 사랑의 줄다리기 선수가 되어줄 수 있지만, 상처를 줄이는 면역력을 키워..
안도 후배는 SOS를 보내왔다. 그녀가 힘든줄 알면서 눈을 맞추지 않고 시시껄렁한 대사만 때리곤 했다. 혹여, 내가 감당못할 폭탄발언을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소모된 에너지를 감당할 수 없기에 다른사람의 고민은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후배는 그녀와 일하기 힘들어했다.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기꺼이 행복하게 관계맺지 못하는 데 대한 자책이 심했다. 엉뚱한 반응과 과도한 참견, 모르는 바를 인정하지 않는 등. 나도 간혹 그녀를 스치면서 걸리는 부분이 있었던 터. 후배는 미워지는 자신의 감정에 자책하고 있었다. 그녀는 결과적으로 후배를 괴롭힌 꼴이다. 하지만 그녀는 바짝 긴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잘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고 긴장때문에 오버해서 호응하고 참견한 건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