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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섹스

섹스도 호혜가 필요해


장자연이 죽었다. 시사인을 읽으니 불편하다. 아내의 유혹이라는 막장드라마와 비교해서 장자연이 복수극이라도 펼치듯 풍자하는 글이 맘에 걸린다. 그녀의 죽음이 섹스를 담보로 연예사업을 확장하는 우리사회의 풍토를 수면위로 드러냈다고는 하나 기자의 내면에는 장씨를 막장드라마 주인공 이상으로 취급하지 않았던것은 아닐까. 시사인 좀 실망이다.

남편은 결혼 10년이 지났지만 내가 반바지만 입고 있어도 손이 슬쩍 허벅지 위로 올라온다. 난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해왔다. 아직도 내가 그리 섹쉬한가?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을 정도였으니까. 감자탕을 끓이고 나면 온몸에 식재료냄새를 뒤집어쓰기 마련이다. 더구나 나는 지킬앤하이드다. 밖에서는 나름 스타일을 자랑하는 여인이지만 안에 들어오면 목늘어진 티셔츠에 눅눅한 채로 걸려있는 츄리닝 차림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손님들이라도 오면 "누구세요?"하는 눈빛을 피할 수 없다. 세수도 잘 안한다. 하루종일 집에서 빈둥거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눈꼽 때문에 눈앞이 가물거리고 하품이라도 할라치면 내입냄새에 내가 혼절할 지경이다. 초인종이 울리면 대개는 생깐다. 사람이 없는것처럼. 여호와증인의 전도사들을 기절시킬 수는 없는일.
여하튼. 그런 나의 부랑자같은 몰골과 퀘퀘한 체취에도 불구하고 허벅지로 올라오는 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당신은 내가 그렇게 섹시해?"
"그럼 당신은 내가 남자로서 매력이 있어?"
"아니, 매력없어. 그냥 동거인같아. 별로 자고싶지도 않고"
"나도 그닥 당신이 섹시하진 않아"
"그래? 그럼 왜만져?"
"하고 싶으니까"
"섹시하지도 않은데 하고 싶어? 그럼 다른데서 하면 되잖아"
"어디서 해? 나보고 매춘을 하라는거야?"
"아니, 그냥 매력적인 여인과 연애할수도 있는거고, 혼자 딸딸이하면 안돼?"
"야, 연애라니. 남자는 다 똑같아. 연애의 목적은 섹스라구"
"그럼 목적대로 연애하면 되잖아"
남편은 한참을 곰곰히 생각하다가 한마디 한다.
"돈이 없잖아"

그렇다면 결국, 돈없이 섹스할 수 있는 상대는 입냄새 폴폴풍기며 눈꼽떼고 있는 부인밖에 없다는 뜻인가?
결혼유지의 끈으로 따지자면 일단 결혼이라는 억압적인 제도가 첫번째요, 두번째로는 패거나 바람나기 전까지는 이혼은 엄두도 못내는 자식사랑이다. 그럼 세번째는 우리의 영원한 로망인 부부간의 사랑일까? 그 사랑안에는 여러가지를 내포한다.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는거고. 사랑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대부분 아닐까. 남자의 손길이 섹스를 갈망한다면 여자는 그 갈망을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돈만 있다면 그까이꺼 나가서 시원하게 풀고 올 수도 있는 그 섹스에 대한 욕구가 정신적 '사랑'임을 확인하는 징표라고 한다면 남자와 여자는 정말 다른 혹성에서 온 사람들 맞다.

다시 돈으로 돌아가서. '돈'은 욕구를 살 수 있는 중요한 교환가치를 가지고 있다. 물건이야 너무나 당연하지만 말이다. 더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권력이나 명예도 교환할 수 있다. 가끔 삑사리 나면 장자연리스트의 사람들이나 정치인들처럼 매장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물론 그것도 돈으로 명예회복이 가능하다. 돈이 없으면 기본적인 욕구조차 맘껏 배설못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참 찌질하게 된다. 플라토닉러브를 찾아 헤매다 보면 돈대신 감정노동 및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지레 포기할 수밖에 없다. 티브이 브라운관이나 컴퓨터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밖에.

화폐라는게 없을때를 상상해보자. 받고 싶은 것과 나눌 수 있는 것에 대한 정보를 토대로 서로 물물교환이 가능했다. 물건뿐 아니라 노동력 교환도 가능했다. 이것을 품앗이라고 하지 아마. 지역화폐라는 이름으로 실제 돈 없이도 생활하는데 필요한 의료,교육,물건 등을 교환한다. 개인이 모든 필요를 채우려면 돈이 유일한데 공동체가 함께 채우면 굳이 돈이 아니어도 된다.

그런데 왜 갑자기 스와핑이 생각날까? 부부간 성교환도 어쩌면 이런 지역화폐같은 개념이 아닐까? 더이상 부부간에 성적매력을 못느끼는 사람끼리 섹스를 교환하는 것. 성윤리에 대한 논란은 일단 접어두고 그저 필요를 채우고자 하는 한 방편으로 생각하면 그렇다는 거다. 좀 웃기긴 하다. 그럴바에야 아예 결혼하지 않거나, 이혼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면 되지. 굳이 결혼이라는 제도를 유지하면서 그래야 할까? 그들도 현재의 사회적 윤리를 형식적으로나마 인정하는 찌질한 모습일뿐이다.

하지만 교환에는 '호혜'라는 개념이 있어야 한다. 양자간에 대등한 이익을 주고받아야 한다. 장씨는 스타로서 발돋움 할 수 있는 기회를 받고, 리스트의 사람들은 성적욕구를 풀었다고 해서 호혜일까? 아니다. 스타시스템에 대한 문제야 전문가들이 알아서 지적하고 있으니 난 좀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보는거다. 대등한 입장에서 이익이 아니라고 생각했을때 거절할 수 있어야 하고 거절할때 이익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으나, 손해가 없어야 한다. 그런데 장씨가 거절했다면 손해가 없었을까? 이건 대등한 이익을 주고받는 개념과 맞지 않는다. 시스템에 앞서 원초적인 본능을 교환하고자 한다면 더욱더 호혜주의를 따라야 한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섹스없이 살면 안될까?"
"어떻게 그렇게 사냐?"
"아니면, 서로가 간절히 하고 싶을때 하는건 어때? 상대방이 거절했다고 해서 삐지거나, 다른 방식으로 보복하지 말고 말이야. 가령, 설거지하다 접시를 깨거나, 다른 대화에 시큰둥하게 참여하거 하는 등의 유치한 거 하지 말고"
"남자는 잘 안된다고. 그게. 그러다 남편 고자 만들래?"
"그 책임이 부인한테 있다는 거야? 말도 안돼. 자 그럼 이렇게 하자. 당신이 정말 하고 싶은데 내가 하기 싫을때는 손으로 해줄께. 그 대신 내가 하기 싫다고 의사를 밝혔을때 깨끗하게 물러서기. 또한 상대방에게 성적 매력이 느껴지지 않아서 바람피울때 결혼이라는 정의의 칼날로 심판하지 않기"
"말같은 소리를 해라"
"말 안돼?"
"지랄하고 있네"

대화의 끝은 항상 내가 미친년이 되고 만다. 하지만 이것이 실현되는 그날 부부의 섹스는 호혜가 실현되는 날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