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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기

자기애


나는 나를 사랑하는가? 를 놓고 씨름중이다.
타자와의 관계속에서 나를 죽이고 살렸던 용의자는 나다.
요즘, 자기애가 강한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내가 보인다.
거적대기안에서 꿈틀대는 나를 쓸어담아야겠다는 생각이든다.
내가 나를 치우지 않음, 누가 나를 치워줄 것인가.

낮은 자기애는 '배려'로 둔갑한다.
다중에게는 칭찬을, 유기적인 관계속에서는 노골적인 불편함을 선물받는다.
나를 사랑한다고 믿었던 나는 진정, 내가 원하는 것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이미지가 그려넣은 박제화된 '행복'에 나를 퐁당 담가버리고 유기했을뿐.
나는 허우적 대는 나를 보면서 마냥 귀여워서 싱긋 웃어준것 밖에는 한 일이 없다.

사람들은 겁쟁이가 아닐지 모른다.
뜨거운 열정을 주체하지 못해 비틀대고 화상을 입는게 후회하지 않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욕망에 충실하고 나를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온도낮은 관계, 혹은 거리두기하는 사람들을 겁쟁이라고 치부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겁쟁이가 아닐지 모른다.
다만, 자기자신을 사랑진행중일 뿐.

각종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난 늘, 자유에 대한 갈망을 해왔다.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말이다.

알것 같다.
그 억압의 기초는 가부장도 아니요
제도도 아니요.
나를 내가 유기했기에 두려움이라는 억압이 존재해왔고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 같다.

이렇게 나를 알아가는 것은 괴롭고 우울한 일이다.
나를 해체하고 해체해서 너덜너덜해지고나서야
조금 변할까 말까한다.

그냥 타고나길 자기애가 강한 사람으로 타고났더라면
먼길 돌아, 아프게 오지는 않았을 것을.
세상에 공짜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