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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기

훼이크

싸이질을 안한지 꽤 되었다. 간만에 네이트온을 켜고 남의 집 훔쳐보듯 내 사진첩을 열어보았다.
내생애 첫정을 준 몽골여행 사진을 보니 가슴이 싸하다. 가부장의 억압으로부터 발버둥치며 살았던 피곤함이 몸 곳곳에 베어있다.
홍콩여행사진을 보니 좀 싱싱하다. 머리털이 뭉텅 빠져있으나 머플러로 교묘하게 멋을 부리고 한껏 홍콩다운 복장으로 2박3일 잠잘틈도 없이 돌아다닌것 같다. 돈이 없어서 정말 쫄쫄굶으며 다닌 델마와 루이스의 여행이었다.
인도나 네팔은 자유여행이 아니라 유적지나 정당,시민단체를 방문하는 아카데미의 일환이었으므로 그닥 기억에 남지 않는다.
탱고사진을 열어본다. 탱고하면서 싸이질을 시작했지 아마?
망사스타킹, 수영장, MT, 발표회, 거기서 나는 즐거워 뒈질 지경으로 웃고 있다.
그리고 제주도 사진. 몸이 바셔져라 토현이랑 진서랑 놀아주는 사진으로 가득차 있다.
그리고 아이사진. 너무 귀엽다. 지금봐도 가슴이 싸하다.
그리고 가족사진. 생일마다 모여서 케잌을 자르는 행복한 한때.
베라쳐먹을 행복한 한때.

싸이 사진첩엔 훼이크가 있다.
행복한 한때만이 등록버튼의 수혜를 받는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옛애인의 사진첩은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
그러면서 내 사진첩엔 온통 행복해 뒈질것만 같은 것만 등록한다.
남의 사진첩이라고 생각하고 클릭하니 참, 토나올 정도로 놀러다닌것 같다.
이렇게 행복한데 왜 머리털은 빠지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부러워 죽을 지경이다.
뭐 저딴 년이 다 있을까? 할 정도로 귀여워 깨물어주고잡은 딸년을 데리고 젊은 도령들과 많이도 놀러다녔다.
도령뿐인가? 여친들의 손에서 손으로 이어지며 성장해온 딸년의 귀연모습을 보니
고도비만의 길을 걷고 있는 그녀에게 줄넘기를 더 열심히 시켜야겠다는 결심이 선다.

여하튼
과거에 천착한 '행복'한 사진을 보며 현재를 망각하고 침을 질질 흘리며 그리워하는 나라는 존재가 불쌍해진다.
정확히 말하면 그립다기 보다 싸이사진첩이 모두 거짓말처럼 느껴진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저런때도 있었지 라며 눈을 지그시 감아보지만 그때 등록버튼은 분명 '행복'이라는 강박을 실천하는 것에 다름아닌 것이였다.

브리크네르는 행복이라는 관념을 막연한 것이라고 했다. 행복은 창녀처럼 더럽혀지고 불순물이 많이 섞였으며 또한 심하게 오염되었기에 언어로부터 추방하고 싶을 정도로 낡은 낱말이 되어 버렸다고 표현한다.

그렇다. 왜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거지?
행복이라는 관념을 이미지화해서 저렇게 사진첩에 담아 놓고는 과거의 추억을 현재로 도배하는 나라는 존재는 왜 행복을 그토록 갈망해왔던 것일까?
과거의 저때처럼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미래의 정작 지금은 빈껍데기 뿐인 현실에 놓여있을 뿐이다. 그 불안은 예측불가능한 미래로 연결되서는 그나마 남은 현실의 틈새를 메워버리고 만다.

정말 행복해야 하나?
지금을 그냥 살 수는 없을까?
사진보며 딸딸이 치는 시간이 준다는건
그만큼 현재가 살만하다는 것 아닌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현재를 담보하지 않는 다는 건
그만큼 현재가 살만하다는 것 아니겠는가?

문득,
타자들이 볼 수 있도록 차려놓은 앨범들은
훼이크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 쓰는 이 글의 문맥 안에는 많은 생각들과 느낌들이 버무려져서
보여주고 싶은 것만 건져진 훼이크일 수 있다.

과거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행복한 미래를 꿈꾸지 않는다.
희망과 기대를 버린다.

그게 인생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