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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기

잡생각

비가 온다. 꾸물거리는 날씨가 좋다. 에너지가 가라앉아서 제대로 고독해질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건 핑계다. 이유없이 좋은거다. 누구는 가을하늘이 너무 좋아서 같이 하늘을 바라보고 몇시간이고 같이 있을 수 있는 여자가 있다면 사귀어버리겠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난 가을하늘보다 오늘같이 꾸물거리는 날씨가 좋다.

그래서 난 머리털 치료때문에 조심하던 술을 마셔버리고 말았다. 알탕에 소주 반병.

목소리가 커지고 술냄새 풍기면서 지하철에서 음악을 들으며 어깨도 흔든다. 술마시면 그게 좋다. 남들이 보든말든 리듬에 맞춰 춤을 출 수 있다는게. 
보기엔 별로 안좋다. 스크린도어에 내 모습을 슬쩍 엿보니 정말 별로다. 모자라도 쓰고 힙합차림으로 흔들면 나름 멋도 있으련만, 오늘은 대충 챙겨입은 덕에 좀 어정쩡하다. 

그래도 좋다. 조증의 시작인가?
정말, 이렇게 살고도 먹고살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정도의 소비가 가능하고 이정도의 시간확보가 가능하고 이정도의 놀이가 가능하다면 말이다.
시한부 재미를 맛보려니 아쉽다.

MBC문화아카데미 등록에 앞서 알바자리를 한번 알아보았다.
적은 시간에 나름 고소득은 녹즙 배달이다. 오전 8시~11시까지 배달하고 100만원이면 꽤 괜찮다.
그런데 회사가 구로구다. 불가능.
세븐일레븐을 알아보았다. 시급 4천원 너무 짜다. 하지만 가까우니까 적어뒀다가 요이땅 할때 연락해서 가봐야겠담
여기저기 알아보니 돈이 적어서 그렇지 할만한 곳이 좀 있다.
아예 고소득은 강남구에 몰려있는데 밤 12시부터 새벽 6시까지 테이블에서 술손님과 대화하는 알바였다.
난 술손님을 가르치려 들게 뻔하고 그시간에 마시고싶은 사람과 마셔야 하기때문에 가고싶지 않다. 물론 그들도 날 원하지는 않을거나. 내가 술집 알바를? 생각만해도 스릴만점이지만 그나마 남은 머리털이 다 빠질지도 모른다.

알바자리가 여러곳 있는걸로 봐서 안심이다.
일하고자 맘만 먹으면 돈을 벌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시한부 재미난 시간을 더욱 신나게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독서모임이 좋다.
적당한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니 얽히고 섥힐 필요도 없고 목적이 뚜렷하니 지루할 일도 없을듯하다.
긴장하지 않아도 되고, 함께 지적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다. 책읽기에 있어 조금의 욕심을 부릴 수 있는 계기도 될듯하다.

강사의 이력서가 필요하다길래 보냈더니 너무 간단하다고 다시 보내란다.
별로 쓸말 없었는데 길게 적으라고 해서 길게 적었다.
정말 직함이 너무 많다.
이런데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으니 얼마나 내가 경직되게 살아왔는가 지난 10년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나의 권력욕이 한장에 가득차있다.
두어군데 전화해서 사퇴의사를 밝혔다.
내게 남은 권력욕을 다 털어버리고 싶다.
이력서가 하얗고 뽀얗게 투명해질때까지 말이다.

소주반명마시니 주저리주저리 떠든다.
대화상대가 없이 혼자 작업실에 앉아있으니 자판하고 떠드는 기분이다.

여튼, 이런 꿀꿀한 날씨는 정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