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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기

송년

무감하고픈 송년이다. 그럼에도 한 해를 보내면 통과의례처럼 관계를 점검하곤 한다.

로드에게 연락이 왔다. 왜 활동을 접냐는 질문에 '그냥'이라고 답했다. 그는 문화부 영화담담으로 자리를 옮겼다.
영화를 실컷봐서 좋겠다고 하니까 답답하다고 한다. 정치사회에 관심많은 그가 MB의 만행을 불구경하듯 하고 영화관으로 발길을 옮겨야 하는 처지가 쉽지 않을듯 하다. 누구에겐 마냥 부러운 자리가 누구에게는 마냥 답답한가보다.
'시내에 오시면 연락주세요' 한번 보잔다. 시내라... 강동은 시내가 아닌가? 꼽사리껴서 영화나 볼까 하다가 말았다.날도 추운데 덜컥덜컥 사람 만나기가 귀찮다.

식이랑 두더지에게 연락이 왔다. 셋이 보잔다. 애는 꼭 떼어놓고 오라는 녀석. 작년엔가 인사동에서 만났을때 낯선 아이와 어색해하더니, 이내 아이를 떼어놓고 오란다. 녀석. 아줌마는 절대 만나지 않겠다더니 10년 넘는 인연의 고리를 쉽게 끊기는 어려운가 보다. 여하튼 시절인연이 엇갈려 식이랑 두더지는 가늘고 길게 지겹게도 만난다. 그닥 유쾌하지도 그닥 통하는것도 그닥 사랑스럽지도 않지만 20대 중반 아팠던 이야기들을 공유한 사이라서 거시기친구를 만나는 기분이랄까. 간만에 멤버중 한명인 창현이에게 연락했다. 교수가 됐단다. 시강때 연락하곤 처음이다. 두더지는 교수가 됐으니 결혼했을거라고 했는데 창현이는 아직 미혼이다. 그래, 뭣하러 결혼하냐. 인생은 지금부터, 교수가 됐으니 술도밥도 많이 사면서 살아라. 창현이는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다.

송여사와 남친을 동시에 만났다. 추워서 나가기 망설였지만 속이 답답하니 술한잔 하고싶었다. 자꾸 안풀리는 남친 곁에서 뒷심이 되어주는 송여사가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런 송여사를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남친도 멋있다고 생각했다. 통상적으로 아름다운 사랑하고는 거리가 먼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그 둘이지만 '사랑'은 사랑인거다. 벌써 3년이나 됐는데도 끈끈함을 유지해주는 건 뭘까? 식칼들고 설치는 송여사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은 뭐지? ㅋㅋㅋ
내친구 송여사는 자기감정에 정직한 여성이다. 사랑에 있어 세속적 잣대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오버하는 사랑의 로망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사람이다. 송년에 송여사를 만나길 잘했다. 정직하다는건 저런거다 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