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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기

바람


바람이 분다. 건조하고 묵직한 바람이다. 가을을 맞이해야겠기에 습한 기운을 걷어내는듯 하면서도 여전히 한여름의 발목을 잡고 있는 묵직함이 느껴지는 이 바람. 참 좋다.
그 늦여름 바람을 후다닥 털어내고 버스에 올랐을 때. 까닭모를 고독이 밀려오고, 난 그 원인이 무엇인지 골몰히 집중하다 간혹 정거장을 놓치곤 한다. 사춘기 이후로 줄곧 그래왔던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원인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그바람이 나를 흔들었을 뿐. 지금도 그런 종류의 것임을 모를리 없다. 그래서 그냥 그 바람을 즐길 따름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 까닭모를 고독을 즐기는게 맞을지 모른다.

한국은 한겨울, 태국에 도착했을 때 오늘같은 바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마 난민 아이들을 돕는지 마는지, 나는 그 바람에 끌려 한주일을 고독의 도가니속에서 보냈던 것 같다.

아이들이 흩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미얀마군인이 습격했고 일부는 메솟 난민촌으로 일부는 더 깊은 정글로 도망갔다고 한다. 수지여사는 가택연금이 또다시 시작됐고, 뭔가 해보지도 못한채 세월이 그냥 흐르고 있다.
세상은 어제와 다를 바 없이 돌아가고, 난 소비에 목말라, 열라게 노동하면서 햄버거를 먹고 있고, 가끔 맥주로 칼칼한 목구녕을 달래고 깔깔거리며 하루를 쓸어내고 있다.

하지만, 이놈의 바람이 내 뒷목을 잡는다. 태국의 그 바람이 밀려오고, 아이들의 풋것 냄새가 코끝을 후빈다.
어떻게 살고 있을까? 레인보우, 에크너히, 수지엔느 선생님과 라크뽀뽀 그리고 기억나지 않는 이름들.

안녕~ 나 써니므. 마돈나야.
여기도 그곳의 바람과 다를바 없이 건조하고 묵직한 바람이 분다.
오늘 식사는 어땠는지. 혹시 부모랑 헤어진건 아닌지.
꿈같은거 꾸지말고 오늘도 잠이 잘 들길 바란다.

고독 나부랭이 따위. 고개를 턴다.
살아있으면 된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