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루살기

이나모토 에츠조, 야마모토 씨의 방문


아시아 주민운동 리포트 끝이 없는 이야기,제정구기념사업회,2011.

어떤 만남이든 인생의 축을 돌릴 가능성이 숨어있다.

이나모토 씨는 평범한 건축가였다. 인도 뭄바이에서 만난 정일우 신부님 소개로 한국을 방문했다.
여행삼아 온 곳에서 철거촌 주민을 만난다. 불타고 용역에게 쫒기는 주민이 어떻게 웃으며 주민과 지낼 수 있는지
의아했던 경험을 하게 되고, 그때부터 빈민촌 기록을 한다.

건축이 그냥 건물디자인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공간이라는 인식과 함께 한국은 물론, 태국, 필리핀 등 아시아 각국을 방문하면서 A4 700쪽 분량의 보고서를 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그 보고서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2년 반의 번역작업을 거쳐 기념사업회에서 출판했다.

책을 펼치는 순간, 내가 함께했던 비닐하우스 주민운동 현장 주민 인터뷰가 있어서 반가웠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지금은 가든5 쇼핑몰로 화려하게 변신한 송파구 문정동. 그곳에서 살던 주민의 목소리, 투쟁, 분노, 슬픔 등을 기록조차 하지 못한 활동가로서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부끄러움이다.

당시, 아저씨였던 이나모토씨는 할아버지가 되고 한국서 환갑 잔치도 해드렸다고 한다.
행당동 주민과의 특별한 관계 때문인지 주민이 마련한 출판기념회 잔치에 참여한 그의 얼굴을 상기되 있었고 급기야 울먹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아저씨들이 활동으로 관계하고, 이제는 나이들어가는 동지로 관계하며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을 보니
괜시리 가슴 한구석이 훈훈하다.

인생의 축을 돌린 만남으로 인해
그는 참 따뜻한 환대를 온몸으로 받고 일본으로 가실 예정이다.

오늘, 그분들은 경주로 갔다.
이번 한국 방문은 여행을 위한 여행임을 강조하신다.

참, 야마모토씨는 아사카 부락해방운동을 해오신 활동가 할아버지다.
70세 가까우신데 아직도 활동가다.
처음본 나를 보는 눈이 따뜻하다.

나이들어 보니, 후배를 키우지 않은 것이 아쉽다고...

개인이 편한 자본주의적 인간인 내가 이럴땐 좀 복잡하다.
더불어 산다는 건 자신을 열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는 부담스럽고...
잘난게 없으니 어쨌든 기대며 살긴 해야겠고. 나이들면 더 그럴거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