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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기

숙제


버겁게 뒤에 쳐져서 기침하는 토현이를 보는 순간. 난 왜이렇게 빨리 걷는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투석받는 5시간 동안 만들기 재료를 사고, 영풍문고를 들리고, 이비인후과를 들릴 예정. 어차피, 오늘 하루종일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좀 천천히 다녀도 될것을 난 왜 그렇게 빨리 걷는겐지. 난 양육을 숙제하둣 해치우는 버릇이 있는것 같다. 양육뿐아니라 집안살림도 마찬가지. 미친듯이 짧은 시간안에 모든것을 후다닥 해버리고 난뒤, 내 시간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그러니까 난 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빨리걷고 빨리 해치우는데 익숙한 셈이다. '나'를 뺀 모든것은 내게 숙제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양육이 내겐 많은 행복을 줬었는데 말이담. 괜시리 미안한 맘이 든다.설 전까지, 숙제하듯 해치우든, 함께 즐기든, 우리둘이 즐기던 서점나들이나 실컷 할 셈이다.

우연히 소봉이라는 여인이 돌밖에 안된 아이를 두고 서서히 죽어가는 다큐를 보았다. 모두 오열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눈물이 솟구쳤다. 기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냉정해졌다. 죽음의 순간만큼 외로운 길이 또 있을까? 철저히 혼자만이 가는 길이다. 목숨걸고 낳은 아이도 오열하는 남편과 엄마, 그리고 시청자인 나도 기적과 상관없이 죽어가는 그녀와 함께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다.
기적이 없다면, 내일 죽을것 처럼 오늘을 살아야겠지. 기대는 잔인하다. 기적 또한 잔인하다. 홀로 죽어가는 길에 함께 놓여진 '가족' 또한 잔인한다. 끝까지 보지 않았지만 소봉은 죽었을거다. 매번 매디컬 프로그램을 볼때마다 느끼는건데 심한 진통속에서 갖가지 방법을 써가며 의식도 없는 사람을 살리려고 하는건 가족의 이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풍문고 가기전 현대백화점 지하 식당에서 잔치국수를 먹었다. 백화점이란 공간은 일반 식당과는 달라서 부모자식간 쇼핑나온 사람들이 들끓는다. 친절한 자식들과 말끔한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니 시니컬해진다. 부모와 함께 사업을 이야기하고, 신상품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멍하니 그들을 쳐다봤다. 정말, 저들은 사랑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