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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기

면접보다


14년전, 난 한 10군데 정도의 면접을 보았다. 정성스레 이력서를 부풀리고 아무 이상없는 가정에서 자랐다는듯이 자기소개서를 쓴다. 성격은 물론 낙천적이며 긍정적이다는 둥 어쩌구저쩌구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나를 한껏 상품화한다.
오늘, 난 면접을 보러 갔다. 노인요양보험제도가 지난해 7월부터 실시됨에 따라 요양보호사 자격증제도도 생겼고 시설을 운영하고자 하는 이들도 늘었다. 나이도 있고 경력도 있으니 난 시설장과 관리직 쪽에 응시했다.
복지시설의 프렌차이즈화라, 참 낯설다. 음식점에서나 어울리는 프렌차이즈 방식으로 시설을 위탁받아 시설장을 임명하여 수익을 내게끔 하는 역할이란다. 어쩐지 연봉이 너무 쎄다 싶었다.

너무 준비없이 면접을 보았다. 질문은 아주 고난위.
"사회복지의 가장 중요한 이념은?"
"시설운영시 중점사항은?"
"갈등이 있을때 해결방식은?"
"수익을 어떻게 낼 것인지?"

여기까진 좋았다. 준비는 안했지만 임기응변으로 입막음이 가능했다. 나름 소신을 조근조근 이야기 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질문.
"결혼은 언제?"
"남편의 직장은?"
"아이양육은 어떻게?"
"주량은?"

비혼이었다면, 남편이 실업자라면, 아니 이혼했다면, 주량이 너무 세다면 어쩌란 말인가.
그간 내가 너무 세상과 격리되어 살았다는 실감이 난다. 개인의 인권문제로 하다못해 어느대학 나왔냐는 소리도 묻지 않는 환경에서 일하던 내가 생전 처음보는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받으니 당황스럽다.

면접보는 내내 요양보호사 교육을 받으러 아주머니들이 몰려들었다. 특이한건 어느 남자분. 건장하고 젊은 분이 요양보호사 교육을 받으러 온것. 아줌마들의 고유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특이했다. 하지만 그것도 좋을듯 싶다. 하고싶은거 하면서 조금만 벌면 되는거 아닌가? 머리굴릴 필요없이 어르신 한분을 정성스레 목욕시키고 식사해결하고 하면 되는거 아닌가. 난 곧 후회됐다. 면접보지 말고 돈필요하면 요양보호사 교육이나 들을껄 하는 생각.

복지시설을 운영하면서 수익을 내라니.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린가 말이다. 국고보조없이 노인에게 지급되는 급여만가지고 수익을 내자면 결국 중증노인환자들에게 좀 덜 먹이고 좀 덜씻길 수 밖에 없다. 빌어먹을....

기분은 상쾌하다. 간만에 자연인으로 돌아간 기분이랄까. 누구누구 소개없이 그저 개인이 가진 상품성 하나만으로 사회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인가. 재미나기도 했다. 전임교수라는 직함을 가진 여인은 면접내내 아주 심각한 얼굴로 나를 테스트했다. 난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이건 잘난척인데 정말 뭘 모르는 여인이 뭘 모르는 질문을 연실 해대고 난 판에 박은 듯한 답변으로 일관하다니, 얼마든지 포장가능한 질문답변으로 사람을 어떻게 뽑는단 말인지.

그녀는 질문했다.
"복지에 대해서는 어케 생각하나요?"
난 씩 웃으면 대답했다.
"복지에 회의적이다. 자원배분, 서비스의 개념에 동의하지 않는다. 주는 자와 받는자가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난 어색한 인사를 하고 돌아서서 나왔다.
'넌 왜 면접보러 왔니?' 하는 표정.
그래, '난 왜 면접보러 간거니?'

이렇게도 떨리지 않는 면접이 있단 말인가. 떨어질거 뻔한데도 할말 다하고 돌아서니 산뜻하다.
어디보자, 담엔 어디 면접을 봐야 할랑가. 이러다가 면접유랑하는거 아닌지 모르겠다.

괘씸한건, 차한잔 안줬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