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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기

소시민


아침에 일어나니 조승수 당선소식이 들린다. 당선될 줄 알아서인지 그리 감격스럽지 않다. 그가 어떤 경로에서 의원직을 잃고 그 가운데 어떤 복잡한 논쟁이 있었는지도, 이후 진보신당 탄생과정에서의 반목을 알기에 펄쩍펄쩍 뛰며 맘껏 좋아라 할 수 없었다. 그저 므흣.

어제, 재보궐선거일이었다. 용산참사 100일이기도 했다. 검게 타지도 않은 시신을 둘러싸고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가운데 속터지는 유가족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일단, 송파꿈나무학교 이전문제로 인해 SH공사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했다. 어린아이들이 집회의 주인공이다. 꿈나무학교 출신인 태곤이는 어느덧 청년이 되어 집회사회를 보고 있었다. 여자선생님들이 어두컴컴한 비닐하우스촌에서 일을 마치고 버스를 타러 갈라치면 어린친구가 꼬박꼬박 바래다주었다. 태곤이는 뒤돌아서는 선생님에게 "내일 또 올거죠?"를 몇번씩 물었던 아이다.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복잡한 가정사로 인해 꿈나무학교에서 밤을 지새기도 했던 녀석들.

3학년 누리는 자진해서 마이크를 잡았다. 당초 예정에도 없던 순서였다. 그 아이는 마이크를 잡자 마자 운다. "저는요, 촛불집회도 갔었고요. 일제고사 반대집회도 갔었어요. 오늘은 꿈나무학교 때문에 왔어요. 저는 이런데 올때마다 너무 마음이 아파요."하면서 운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짧은 부탁의 말도 전한다. 이래저래 마음이 아프다.

집에 들렀다 용산으로 가려니 들깨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버스가 막혀서 집에 들렀다 용산으로 가기엔 시간이 맞지 않아 그냥 들깨언니네로 향했다. 짐을 정리하니 여성학 책들이 있어서 내게 주려고 전화했단다. 고마운 언니같으니라구.

밥달라고 조르니, 갈비탕과 밥, 라면을 준다. 여기에 쐬주가 빠질 수 없지.
언니는 남들이 이야기 하는 '소시민'이다. 여성학책이 어떻구 저떻구 해도 개인이 관심있어서 골라서 읽었을 뿐 한번도 정치적 신념을 이야기해본적 없다. 물론 나도 길에서 주운 사이이니 내 주변의 사람들과 언니의 활동공간은 전혀 다르다. 조승수 후보의 선거결과가 궁금해올 즈음 언니는 말한다.

"마돈나는 모를거야. 나랑 남편은 항상 진보정당을 응원해왔어. 대선때 모두들 노무현 찍었다지만 우리는 권영길을 찍었지. 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어. 우린 소시민이고 아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다들 한나라당 일색이니까 말도 못꺼내고 살아. 집회같은데 가고 싶은 맘이 있지만, 우린 가진고라곤 몸둥아리밖에 없어. 작은것 마저 잃을 순 없어서 이렇게 소시민으로 살고 있어. 이런 내가 답답하지?"
"안답답해. 내가 학교나 다른공간에서 사람들을 만날때, 애써서 투사처럼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와 같겠지."
"그러나, 마돈나, 이런건 알아줬음 해. 나처럼 이런 소시민들이 꽤 있다는거"

지난 대선때 난 고덕동에서 투표참관인을 했다. 투표소별 개표결과를 보고 적은 표였지만 궁금해했다. 우리말고 도대체 누가 권을 찍었을까? 몇표안되니까 추적하면 알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이미, 언니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지지해야할 정당과 사람을. 그런 사람들을 선도하고 계몽하려고 했던 지난날이 부끄러웠다. 내가 집회가 어떻고, 진보가 어떻고 떠들때마다 이미 알고 있지만 선언하지 못하는 그녀는 더욱더 부담만 되었고 얼마나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몸둘바를 모르겠다.

언니는 한동한 주사파가 만든 단체에 후원을 해왔다. 그런데 너무 투쟁적이고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포기했단다. 나를 처음 만났을때 그런 투사를 만난것 같아 경계했다고 한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언니는 내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왠지 그들과 다른 나를 보면서 속내를 열어놔도 되겠구나 싶었단다. 나도 뭐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데 말이다.

갑자기 소시민의 뜻이 궁금해졌다. 소시민은 소심한 시민인가? 아니면 작을소? 그럼 대시민은 누구야? 소시민을 자처하는 사람은 많아도 대시민은 없다. 왜 소시민이란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을까? 궁금.

조후보가 당선되고 진보신당은 원내정당이 되었다. 스타로 인해 미디어는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그것도 시들한 것은 원내에서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원내가 되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뭔가 달라지리라는 기대가 있다. 하지만 너무 빠르다. 너무 빠르다는건 그에 따르는 과정에서 겪을 시행착오를 할부끊는 셈이다. 구찌가 작으면 내부 잡음이 크고 구찌가 커지면 그 안에서 집권하려고 싸운다. 싸움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니 어떻게 하면 잘 싸우는지 알 수 있겠지.

들깨언니의 소리없는 응원과 기대가 헛되지 않았음 한다. 진보신당의 이런저런 찌질한 모습을 알고 있는 난 차마 까발릴수 없었다. 그저 시니컬하게 미소한번 띄울 뿐.

머리가 복잡하다. 언니를 만나니, 맘이 무겁다. 집에 돌아오니 똥오줌을 여기저기 싸놓은 복남이가 꼬리를 흔든다. 도대체 언제 배변을 가릴 수 있을지 원. 옥상의 대지에서 똥누던 습관때문인지 거실에만 똥을 눟는다. 야단친다는게 소리만 지른다. 복남이는 고개를 갸우뚱 하며 두발로 서서 안아달라고 조른다.

"몰라몰라몰라몰라, 난 머리가 복잡해, 오늘은 좀 나 내버려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