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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기

망치


"호전적인 자는 평화로울때 자신을 깨부수는 자다" 니체의 아포리즘.

나를 관찰하면서 익숙했던 것들과 이별을 준비한다. 쉽지 않다. 밀착된 관계에서 사건에서 시시때때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현재를 판단하고, 그로인해 우울에 빠지기도 한다. 역으로 좋을 것 없는 현재를 과거가치판단으로 행복해하기도 한다. 지금은 어디로 가고 나를 호시탐탐 노리는 선가치판단들이 나를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때론 운이 좋아서 상처로 인해 빠른시간내에 효율적으로 변화하기도 한다. 간혹 '성장'의 선물을 받기도 한다. 그러면서 위로한다. 그러나, 낯선 사건과 상처만이 나를 부술 것인가? 가만히 앉아서 사건과 상처를 기다리며 살아갈 순 없다. 평화로운 안정감에 누워 솔바람이나 만끽하며 살고싶지 않다.

편안하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쟁시스템에 맞춰 살아온 육체는 릴랙스한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우왕좌왕한다. 편안하다가도 불안하다. 어쩔 수 없이 내 몸을 이리저리 굴려주길 바라고, 정신 또한 바쁜육체에 팔려서 '나'에대해 집중하는 민감한 시간들을 버리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그래서 똥꼬에 힘을 준다. 유혹이 귓볼을 간지르며 속닥거릴때 잠시 침묵하고 혼자 떠들게 만든다. 그러다 지쳐 왔던길을 되돌아 갈때, 사뿐하게 이별을 고한다. 

쳇바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다시 그 유혹이 서너시간 나를 복잡하게 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며 사건들을 퍼즐맞추며 홀로 울그락불그락한다. 잠시 침묵하고 이별한다. 사실에 맞춰 근거를 만드는 재주를 이렇게 써먹을수 없는 일이다. 

후배에게 미안한다. 문득, 그에 대해 선가치판단으로 사람의 감정을 규정해왔던것은 나의 큰 오류였다. 얼마전 그를 만났을때 나의 오류를 알아차렸지만 내 문제에 집중하느라 별 생각없이 지내왔다. 어떤 사실에 있어 내가 판단한 근거로 그의행동을 해석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후배는 내가 판단했던 것처럼 두려움 때문에 사랑을 포기한 것도 아니고, 생각했던 것처럼 그녀를 스토커처럼 일방적으로 가슴앓이 한 것도 아니었다.
 
이런저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저 그것을 뛰어넘을 정도로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고, 그녀 또한 자신에게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데 만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미래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하고 지지했으며, 다른 이들이 갖는 그녀에 대한 생각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술마시면 추억을 되새김질 하기는 했어도, 미련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 후배는 그녀와 그녀를 둘러싼 사람, 그리고 자신에게 벌어졌던 사건에 대해 과대, 혹은 과소하게 판단하거나 꾸미지 않았다. 그저 흘려보냈을 뿐. 내가 그 후배와 그녀의 감정에 집중한 시간이 좀 우스웠다.

갑자기 몇주전 그 후배와의 대화가 생각나는건. 니체 때문이다. 나의 오만한 가치판단이 그를 참 찌질한 인간으로 몰았던 것이다. 정말 찌질한 건 나였다. 무감한 후배를 둘러싸고 시시때때로 판단하고 그 판단으로 대응하고 해석했던 나를 반성해본다. 그건 사적관계들이 얽히고 섥혀서 정보제공자로서 그를 이용하고자 했던 사악함이 나를 지배할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익숙했던 이 한가지 판단과 이별하고, 다시 그 후배를 바라보니, 달라보인다. 해석이 다르면 세상이 달리보이듯 말이다. 내가 변하면 술자리의 대화도 변하리라. 좀 재미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그동안은 너무 재미가 없었던 건 사실이다. 그건 그 친구의 잘못이라기 보다, 나의 시선, 나의 해석을 전제로 대화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슬슬 찾아보자. 내가 나와 이별할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