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고리를 고르다가 관뒀다. 이쁜것들이 있으면 뭐하랴, 안경쓰고 왕귀고리 하면 눈만 어지럽게 뱅글뱅글돌아갈 뿐인걸. 화장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곱게 단장하고 마지막으로 안경을 얹으면 바로 교사스타일된다.(전국의 교사여러분 죄송해요) 내가 원하는건 히피나, 자유로운 영혼이 뚝뚝 묻어나는 예술가스타일이다. 하지만 그놈의 안경때문에 내 간지는 도무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다. 갑자기 라식수술이 너무 하고 싶어졌다.
남편이 맥주를 사들고왔다. 요즘 이런저런 복잡한 일 때문에 일주일에 두어번은 집에서 맥주를 마신다. 나는 조심스레 나의 소원을 이야기해본다.
"나, 라식수술하고싶어"
"왜?"
"화장하고 싶고, 목욕탕에서 미끄러지기 싫고, 왕귀고리 달고 싶어"
"나도 라식수술이 소원이었잖아"
"당신은 왜?"
"난 운동하고 싶다고. 단지 그이유야. 결혼초부터 내 소원이었잖아"
맞다. 우리의 소원은 한가지. 안경을 벗는거다. 안경쓴채로 키스할때 불편한건 말해야 뭣하랴. 분위기좀 내려고 하면 안경이 밀려서 상대방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이그러진다. 웃음많은 나로서는 멜로드라마의 한장면을 망쳐버리기 일쑤다. 아! 샤방샤방하고 싶어라. 일어나자마자 눈떴을때 방안의 사물이 명확히 보이는 환희. 맛고보 싶어라.
우리는 누가 먼저 시술할 것인가를 이야기했다. 우선, 내가 먼저 하기로 했다. 남편은 나이가 많아서 어쩌면 노환이 시작되는 시점. 라식수술의 효용이 낮을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일단 한살이라도 젊은 내가 시술받기로 했다.
그런데 돈이 문제. 요즘같은 형편에 과연 수술비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인가. 하기사 내가 언제 돈마련해놓고 저질렀나. 소원을 할부로 들어주는 신용카드가 있지 않은가. 장기할부를 끊기로 합의했다.
다음은 일정이 문제. 언제쯤 수술대에 오를 것인가. 5월정도에 하기로 했다.
그러나 암초는 다른데 있었다. 바로 정작 수술의 당사자 내 안구.
내 눈의 지름은 보통사람보다 짧다. 대학교때 소프트렌즈를 만들러 갔다. 간호사가 내 눈에 끼어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소프트렌즈는 내 눈에 안착하지 못하고 눈밖을 겉돌았다. 간호사는 땀을 뻘뻘 흘리며 집어넣으려고 했다. 결국 내가 했다. 간호사 왈 "이렇게 렌즈 안들어가는 손님은 처음이예요. 홀홀홀"
라식수술을 위해 의사가 눈을 벌려서 수술을 해야 하는데 과연 안전하게 수술할 수 있을 것인가. 걱정스럽다. 그러다가 눈이 찢어지기라도 하는 날엔.... 남편은 이마에 손을 얹고 한참 고민하더니 내게 말했다.
"눈을 찢고 쌍꺼풀까지 하는 삼종세트로 수술을 해야 하나?"
"그럼 나야 좋지. 그렇게 할까나?"
"됐어. 이제 와서 눈찢어서 뭘하게"
"하기사, 나도 내 눈이 조금씩 사랑스러워지기 시작했어. 눈찢고 쌍꺼풀할 생각은 없어. 그저 라식만이라도..."
"우선 의사를 찾아가서, 이렇게 작은 눈도 라식이 가능한지 물어보자."
진지하게 고민하는 남편. 진심으로 걱정하는 나. 눈의 지름이 짧다고 해서 불편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렌즈낄때 말고는 말이다. 보일거 다보이고. 황사바람 굳세게 견뎌내고 . 티끌 잘 안들어가고 뭐 좋은점도 있다. 다만, 예쁘게 눈물방울 고여서 방출하는 그림을 연출할 수 없다 뿐이지.
오늘아침. 간만에 화장하려고 묵혀둔 하드렌즈를 착용했다. 얼마전 친구가 선물한 왕귀고리도 준배했다. 근데 이게 웬일인가. 어제밤 남편과 마신 맥주 때문에 눈이 붙어버렸다. 아이라이너를 굵게 그려서 착시효과를 노렸지만 내 눈동자는 눈꺼풀에 숨어버리고 얼굴의 모공들은 활짝 열려있었다. 두개의 여드름은 노란고름을 머금고 활짝 피워있었고 어제 달고 있던 작은 금귀고리가 아작나 있었다. 큰 귀고리가 착용될거라는 조짐을 눈치챘는지, 자식들이 존재감을 잃고 박살나버린 것이다. 모아서팔면 돈도 되는 금인디.
꿋꿋하게 화장했다. 왕귀고리도 달았다. 흠흠 라식하면 이런기분 내내 느끼겠지? 화장품도 곰팡이 나지 않게 매일매일 쓸 수 있고. 영혼이 자유로운 예술가 스타일로 꾸밀수도 있겠지. 하지만 과연 난 수술대에 오를 수 있을 것인가.
의사는 내 눈을 활짝 벌릴 수 있을 것인가. 커밍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