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정을 붙이게 만든건 한강이다. 봄이면 진달래 따먹고 아카시아 우거진 숲속에서 친구들과 비밀스런 놀이를 하던 시골살이에 익숙한 몸과 맘이 도심에서 버텨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꽃이 피워도 이쁜지, 햇살이 따뜻해도 좋은지 모르고 그저 재빠른 걸음으로 목적지를 향해 오가던 나를 잠시 숨고르게 해줬던 한강. 어느 도시에 반경 1킬로가 넘는 큰 강이 흐른단 말인가. 그 한강을 만끽하기 위해 추운겨울이 지나기를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던가.
오늘은 자전거 타기에 딱좋은 날이었다. 충동적으로 자전거 열쇠를 풀렀다. 바지 밑단이 넓어서 양말속으로 넣으려고 했는데 양말목이 짧아 포기했다. 가방도 배낭이었어야 했는데 어디다 둬야할지 몰라 왼쪽 손잡이에 묶었다. 핸들놀리기가 불편하다. 헬멧은 사뒀으나 차림새가 영 탐탁치 않아 쓰지 않았다. 스포츠도 패션인디, 검정색 너덜너덜한 체육복 차림에 헬멧은 뭔가 아니다 싶었다.
넉넉하게 약속시간을 잡았는데도 역시나 내 자전거 속도는 도보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10분이나 늦었다. 학동님이 나와 있었다. 비싸고 좋은 부품으로 조립한 빨간 자전거와 누가봐도 저사람은 자전거 매니아구나를 알아볼 수 있는 차림새. 캬아~ 나랑 비교된다. 하지만 뭐 어떠랴. 자전거는 내게 있어 이동수단이 아니라 놀이기구인걸.
학동이 챙겨온 얼그레이 홍자를 마시니 갈증이 가신다. 자전거를 타려고 만난건지 수다를 떨려고 만난건지, 제법 센 강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두런두런 수다를 떨었다. 그간 지낸 이야기며, 한강의 이름모를 '철새'무리의 출몰에 대한 궁금증이며, 왜 한강에 외국인이 많은지, 특히 자전거에 대한 이런저런 상식을 배울 수 있었다. 학동님도 한수다 하시기 때문에 쉴새없이 많은 정보를 쏟아냈다. 내가 다 기억하고 몸에 익힐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자전거를 좀 더 재미나게 타려면 익혀야 한다. 역시 백수친구를 둔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두 백수가 적어도 주 1회 정도는 만나서 한강을 누빌 예정. 도시락은 내가 맡고 맛난 커피나 차는 학동님이 맡았다.
한강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런저런 추억이 새록새록하다. 한강에서 카섹스를 시도하던 10여년전. 그땐 내가 순진했던 터라 왜 한밤중에 한강으로 그가 차를 몰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섹스를 시도하는 순간 나는 놀란 토끼눈을 하고 그를 밀쳐버렸다. 몸집이 작은 그는 나가 떨어졌지만 술기운에 도전의 도전을 거듭했고, 급기야 김이 뽀얗게 서린 차창사이로 후레쉬 빛이 우리를 강렬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아뿔싸. 후레쉬맨의 등장. 부랴부랴 옷을 주워입고 한강을 빠져나왔다. 그 이후로 그와의 연락두절.
추웠던 겨울목전, 태양소녀와 나는 한강에서 접선했다. 천호대교에서 출발해 반포대교까지 가서 사당의 재래시장에서 족발을 안주삼아 소주한병. 술기운에 용감해진 우리는 도로를 가로지르면 신나게 달렸다. 한강인줄 알고 들어섰으나 반포의 어느 아파트 단지. 그래도 두렵지 않았다. 술먹었으니까. 소녀와 헤어지고 나서 나는 다시 멀고먼 길을 혼자서 달렸다. 맞바람이 센 한밤중의 자전거타기라... 무서움이 엄습해왔다. 그래서 페달을 세게 밟았다. 그러나 아무리 세게 밟아도 전진하지 않는나. 그놈의 바람때문이었다. 복장도 어둡고, 후레쉬도 없고, 헬멧도 없는 자전거 타기는 무척 위험하다. 그날 난 암사사거리에서 오토바이랑 충돌할뻔 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시껍하다.
족발하니까 생각난다. 한여름 한강의 노을이 선연할때, 난 친구들과 족발과 맥주를 사들고 자리를 잡았다. 아무말 하지 않고 그저 서너시간동안 족발을 뜯었던 생각이 난다. 각자가 갖고 있는 사랑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혼자서 삭히고 혼자서 고민하던 그시간이 참 특별했던 것 같다. 그 한강의 노을을 잊을 수 없다.
한강, 사랑하는 한강. 비록 네가 서울의 남과 북을 가르며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많은 차이를 만들어 놓은 역할도 했지만 네가 없었다면 나의 서울살이는 드라이 했을 것이다. 이렇게 백수가 된 지금, 릴랙스한 육체를 견디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정신을 잡아주는 것도 너다. 나, 이렇게 행복해도 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