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민을 사랑할 수 있을까?
- 의식의 변화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 혹시 이념적 언어를 선택하면 그들이 의식화했다고 착각해왔던것은 아닐까?
- 스스로 의식을 깰 수 있도록 대화라는 도구를 사용한다.(흠, 탁월한 소크라테스)
- 대화는 그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의 배경과 하는 것이다.
- 억압자의 관심은 피억압자의 의식, 고로 의식변화에 집중해야 한다.
- 분노를 조직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거시적이기만 한 그간의 운동을 반성한다.
- 외국의 철학을 흡수했다가, 소용없으면 폐기처분하는 식의 공부는 안된다.
가난, 공동체, 생명, 우리만의 철학탐색이 필요하다.
- 진보란, 위험을 무릅쓰고 혁명을 지켜 나가는것. 혁명의 과정은 민중으로부터 출발, 민중의 수준을 인식하는 것이 출발점. 그들의 변화의 목표를 우리가 세우지 말라.
정말 사랑할 수 있을까? 주민을?
청빈한 사랑을 나눌 수 있을까?
가난이란, 더 가지지 않으려는 청빈함.
청빈한 사랑이야말로, 더 가지지 않으려는 욕심없음.
여전히 기대한다.
의식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기 때문.
질문을 가졌다는 것은 의식이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
질문많은 이들은 분명 변화해왔다.
내가 짊어지고 온 질문들
2008년 8월 27~30, 한국주민운동정보교육원 트레이너 세미나에서
하루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