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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기

찝찝

마무리한다는 건 시원섭섭하기 마련이다. 어쩌면 '시원'에 더 방점이 가있을지 모른다. 무슨 마무리든 '시원'해야 미련이 없다. 일이든, 사랑이든.

요즘들어 내겐 시원한 마무리가 없다. 10년간 활동해온 단체를 그만두는데도 환송받을 줄 알았으나, 일이 꼬여 단체 망가뜨린 원흉이 되고 말았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에서는 어쨌거나 몸담고 책임져왔던 사람에게 성패가 몰리기 마련일걸 알지만, 똥누고 밑닦지 않은 기분이다. 여하튼 그래도 마무리는 되었다.

주민조직가 훈련 6개월 과정이 마무리됐다. 수료식을 마지막으로 말이다. 훈련생들은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길고긴 훈련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얼마나 감회가 새롭겠는가. 그러나 이들을 담당했던 나와 몽애언냐는 떨떠름했다. 중견이라고 하지만 과연 이들이 조직가로서 거듭날 것인가에 대한 회의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들의 문제가 아니다. 교육훈련에 집중하지 못했던 우리의 탓이 컸다. 다른 교육때는 일주일 내내 훈련생을 상상하고 연락도 자주하고 교육준비도 철저했는데, 이번에는 어쩌면 대충했는지도 모른다. 훈련생이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 이탈하니, 자책도 자책이려니와 어찌나 기운이 빠지고 정이 꺼지던지. 그간 어떻게 6개월을 버텼는지 신기할 정도다.

명동은 참 발랄했다. 우리도 여행가면 시내한복판 호텔에서 나와 싼지 비싼지도 모르고 시장을 한바퀴 돌며 쇼핑하듯 일본 관광객들은 한껏 들떠서 명동을 누비고 있었다. 마무리의 찝찝함을 안고 훈련생 선물을 사러 돌아다니는데 그들이 부러웠다. 나도 저러고 돌아댕기고 싶다.~
교육훈련비도 받았겠다. 에라 모르겠다. 몽애언니랑 나는 싸구려 쉬폰 원피스를 골랐다. 명동에 언제 올지도 모르고, 동네는 너무 비싸니 이참에 쇼핑이라도 해보겠다는 심산. 제일 저렴한 쉬폰들 가운데서 이리저리 몸에 맞춰보고 아주 환한 색으로 골랐다. 사실 입어볼 수 없기 때문에 몸에 들어갈지 안들어갈지도 모른다. 그래도 샀다. 착잡함이 가신다.

종합평가시간. 이런 우리의 찝찝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훈련생은 이런저런 평가들 가운데 트레이너의 고마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관계와 사적이야기들을 기억하고 있는듯 싶었다. 나무는 마돈나에 대해 이야기 했다. 내가 그렇게 신기했나? 바람은 속썩인 원흉이 되고, 꽃바람은 우등상을 받는 기분. 산적은 결의가 대단했다. 중도에 그만둔 동기들이 참여하기로 했으나 다들 오지 않았다. 면목없다며 문자만 날렸다. 잠수왕자 대마왕은 역시나 연락두절이다가 가까스로 연락이 됐고, 곽가는 오고싶어했으나 회의때문에 오지 못했다. 장문의 문자만 날릴뿐~ 뭘 그리 미안하다고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는지 원. 괜찮다고요~

시끌시끌하게 뒤풀이하는데 은에게 전화왔다. 뜬금없이. 서울에 왔나 싶었는데 광주란다. 그녀석이 결혼한지 벌써 석달이 되었다. 결혼식장엔 가지 않았다. 난 그 결혼에 반대했으니까. 축하한다는 소리도 하지 않았다. 녀석은 한참 뜸을 들이더니 고통스럽다고 했다. 결혼이.
결혼전처럼 결혼후에도 그렇게 싸울것 같으면 헤어지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고 했다. 내가 뭘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위로고 뭐고 별로 할말도 없었다. 10년을 사귀었으니까 그냥 하지뭐 하는 식으로 결단한 결혼생활이 달콤하기야 하겠냐만은, 매사에 회의적이고 뜨뜻미지근한 녀석의 성격을 아는지라 그 여인을 위해서도 결혼은 막아야했다.
너무 주제넘지만 말이다. 녀석은 공동체생활이 어울리지 않는다. 느리고 사색이 깊다. 혼자 내비두면 재미나게 뒹굴뒹굴 살아갈 거고, 글쓰며 놀거고, 열정이라곤 눈씻고 찾아봐도 없기 때문에 그저 천천히 하고싶은대로 하고 살아갔을 것이다.

결혼은 그에게 효율적인 인간으로 거듭나기를, 다정한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보통 사회인으로 거듭나기를 요구했을 것이다. 10년이나 녀석을 보고 살아왔으면서도 떠나지 않은 그녀에게 효부상을 줘야 한다. 하지만, 결혼했으면 그녀도 녀석을 감당할 각오를 하지 않았을까? 결혼하면 변할거라는 쓰잘데기 없는 희망이 있었나?

여하튼, 수료식 뒤풀이 때문에 길게 통화하지 못했다. 만나러 서울에 온단다. 만나도 별로 할 이야기는 없다. 내인생도 책임못지는데 남인생에 감나라배나라 할 처지가 못된다. 그저 듣는 수밖에...

배가 터질것 같다. 내 배는 쉽사리 꺼지고 쉽싸리 채워진다. 방귀도 자꾸 나오는데 발사는 못하고, 배가 부글부글하다. 난 힘줘서 방귀를 뀌기 때문에 소리가 좀 크다. 북한로켓발사소리까진 아니지만. 더구나 저녁메뉴는 청국장 아닌가. 스키니진을 입었기 때문에 배는 조이고, 그 뱃속은 가스로 가득차고, 맥주 한입 마시니 다시 목구녕으로 올라온다. 염통에 뭔가 가득찼다는 증거겠지. 육포를 씹으며 가까스로 눌렀으나 맥주 두잔 이상 들어가지 않는다.

일찍 뒤풀이를 마무리 하고 지하철까지 걸어가는길. 다행히 시영이 형과 동행. 버스가 지나칠때나 소음이 있을때를 기다려서 괄약근에 힘을 주었다. 쁑쁑쁑쁑~ 눈치채도 쪽팔리지 않는 형이지만 그래도 최소한 감추고 싶었다.
집에와서 남겨둔 방귀를 다 뀌고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다른건 몰라도 방귀는 시원하기만 하고 섭섭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