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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섹스/그여자

인형의집'로라'를 만나다

안다. 헤어지는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글자 몇개 없고 명쾌한 그림으로 확실한 메세지를 전하는 그림책같은 삶은 없다는것을. 누구나 다 그러하듯이 나도 그들처럼 그러하게 살 수 없다는 걸. 그녀는 안다. 사랑하는 그를 만나고 용기내어 인형의 집을 나섰지만 누구도 그녀를 온전히 받아주는 곳이 없다는 걸 왜 모르겠는가. 다시 만난 그도 여전히 불안한 존재일 뿐, 그녀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따뜻한 사랑따윈 아니라는것을 그녀는 안다. 어쩌면 집을 뛰쳐나올때보다 지금이 더욱 어려울지 모를 일이다. 그녀가 지금의 그에게 가기까지 견뎌낸 파고만 하더라도 집채를 삼키고 남을 만큼 높고도 깊었으리라.

그녀는 또다시 이별을 준비한다. 떼어내도 감각없는 굳은살이 박혀버린 그녀의 심장.
쓸쓸하지만 그렇게 이별하고 또 만나겠지. 그녀는 힘들지만 눈이 반짝였다. 바닥을 치고 올라온 사람 특유의 거리두기가 느껴졌다. 그의 사랑에서 용기를 얻었지만 내면에 들끓는 소유욕을 거세하고자 발버둥치는 쿨한 모습이 아프지만 나랑 너무 닮았다. 난 오늘 그녀를 만났다. 통성명도 하지 않고 느낄 수 있었다. 용감한 로라. 섹시한 로라. 쿨하려고 노력하는 로라. 결코 지금 그와의 사랑이 단절된다 하더라도 퇴행하지 않을 것 같은 로라. 그녀가 내앞에 앉아 덤덤히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사랑을 이야기한다.

내 주변은 슬슬 변화하기 시작한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어서 그런건지 시류가 그런건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그녀는 평범하다 못해 바보같이 살아온 전업주부였으니까, 세상이 변하는건 맞다. 옳게 변하고 있다. 난 침을 꼴깍 삼키고 한마디 물었다. "바닥을 치고도 행복하십니까? 지금 그와 헤어진다 하더라도?" 그녀는 대답했다. "네"

기득권을 버리고서라도 자신의 행복을 찾으려고 용감한 결단을 내린 그녀들을 만났다. 이번주만 해도 벌써 두번째 그녀. 난 무엇이 두려운걸까. 머리가 복잡하다. 정말 난 아날로그적이다. 익숙한 것이 불편하다손 치더라도 애써서 맞춰보려 애쓰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작은옷을 억지로 입는것처럼 말이다. 아이를 데릴러 급하게 택시를 잡아탄 나는 여전히 다리를 떨고 있었다. 화가 나있을 아이를 달래려면 어떡해 해야 하나? 하는 초조함 때문이다. 간혹 밤이면 걸려오는 남편의 전화에도 난 초조해서 다른사람의 말이 귀에서 윙윙 거릴뿐이다. 복종, 순종, 인내, 희생 얼어죽을 저런것들은 내 몸 어딘가의 유전자를 점령하고 있나보다. 아니, 그녀는 더욱 심했을 것이다. 아직 난 바닥을 치지 못하고 있어서 어정쩡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간 계기가 생기겠지. 비난이 난무하겠지. 돌아선 이들도 있겠지.
하지만 뭐 어떠랴. 난 원래 고독한 사람인것을.    



연애시대 - 아무리생각해도 난너를
간만에 들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