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에 장기하 기사가 실렸다. 장기하를 모르면 시대에 뒤떨어진거라는 문구를 보는순간 가슴을 쓸어내린다. 어찌됐든 다음팬카페에도 가입되어있지 않은가. 난 그의 노래를 듣는 순간 산울림 김창환의 음악들이 환생했다고 생각했다. 역시 내귀는 죽지 않았다. 노래는 못해도 리스닝은 좀 되거든. 역시나 장기하는 산울림과 신중현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딴별에서 온듯한 그의 노래와 그의 무덤덤한 얼굴이 좋다.
난 4차원이 좋다.
그래서 드는 생각인데 요즘 4차원 본능이 꿈틀대는걸 느낀다. 예전엔 미처 몰랐다. 왜 4차원 친구들이 내주변엔 많은지에 대해. 나 또한 지구밖 행성에서 얼떨결에 이곳에 떨어졌을 뿐인데. 적응하기 힘들어서 본능를 꽁꽁 숨기고 살았는지 모를일이다.
반성사례
4차원 친구들에게 있어 세상의 끈은 나였다. 난 고등학교시절 장미파 아이들과 친했다. 당시 면도칼을 입으로 씹어 뱉는 고난위 기술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었는데 두렵지만 그럭저럭 잘 지낸듯 하다. 난 어줍잖게 장미단을 교화하려 했다. 학교는 이런 나를 프락치삼아 수원역을 샅샅이 뒤지곤 했다. 미안해 친구들.
4차원본능사례
난 학교에 왜 가야하는지 2학년 될때까지 몰랐다. 한글을 2학년때 떼고 구구단은 3학년 말이 되어서야 간신히 하게 되었다. 초등 4학년때 자살을 결심했다. 그건 단지 낙조로 인한 근본적인 고독감 때문이었다. 중학교때 아스팔트에 비틀거리며 자라는 잡초에 대한 안타까움을 노래하며 며칠씩 우울해하기도 했다. 원두막에서 한나절을 혼자 꼼짝않고 누워서 공상에 빠지기도 했다. 동네언니와 동성애코드 놀이를 했다. 죄의식을 갖게 되었지만 지금은 말할 수 있다. 짜릿했다. 중학교 3년 내내 산길을 돌아 혼자 걸어다녔다. 무섭지 않았다. 너무 약한가? 여하튼.
점정 성장하면서 난 정해진 운명앞에 좌절하는 운명론자로 커가고 있었다. 깊은 한숨과 함께 모두 다 운명때문이라고...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4차원 친구들과 깊은 공감을 하면서도 난 그렇게 살 수 없다고...
그러나 난 운명때문에 좌절된게 아니고 내생각대로 나 답게 살수 없었던 가정적 사회적 억압때문이었음을 지금 절감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난 다시 4차원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
그리고 행복해지고 있는 중.
주변인, 이탈자의 삶이 바로 내가 개척할 운명이라는 것.
쓸데없는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난 4차원이 좋다.
그래서 드는 생각인데 요즘 4차원 본능이 꿈틀대는걸 느낀다. 예전엔 미처 몰랐다. 왜 4차원 친구들이 내주변엔 많은지에 대해. 나 또한 지구밖 행성에서 얼떨결에 이곳에 떨어졌을 뿐인데. 적응하기 힘들어서 본능를 꽁꽁 숨기고 살았는지 모를일이다.
반성사례
4차원 친구들에게 있어 세상의 끈은 나였다. 난 고등학교시절 장미파 아이들과 친했다. 당시 면도칼을 입으로 씹어 뱉는 고난위 기술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었는데 두렵지만 그럭저럭 잘 지낸듯 하다. 난 어줍잖게 장미단을 교화하려 했다. 학교는 이런 나를 프락치삼아 수원역을 샅샅이 뒤지곤 했다. 미안해 친구들.
4차원본능사례
난 학교에 왜 가야하는지 2학년 될때까지 몰랐다. 한글을 2학년때 떼고 구구단은 3학년 말이 되어서야 간신히 하게 되었다. 초등 4학년때 자살을 결심했다. 그건 단지 낙조로 인한 근본적인 고독감 때문이었다. 중학교때 아스팔트에 비틀거리며 자라는 잡초에 대한 안타까움을 노래하며 며칠씩 우울해하기도 했다. 원두막에서 한나절을 혼자 꼼짝않고 누워서 공상에 빠지기도 했다. 동네언니와 동성애코드 놀이를 했다. 죄의식을 갖게 되었지만 지금은 말할 수 있다. 짜릿했다. 중학교 3년 내내 산길을 돌아 혼자 걸어다녔다. 무섭지 않았다. 너무 약한가? 여하튼.
점정 성장하면서 난 정해진 운명앞에 좌절하는 운명론자로 커가고 있었다. 깊은 한숨과 함께 모두 다 운명때문이라고...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4차원 친구들과 깊은 공감을 하면서도 난 그렇게 살 수 없다고...
그러나 난 운명때문에 좌절된게 아니고 내생각대로 나 답게 살수 없었던 가정적 사회적 억압때문이었음을 지금 절감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난 다시 4차원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
그리고 행복해지고 있는 중.
주변인, 이탈자의 삶이 바로 내가 개척할 운명이라는 것.
쓸데없는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