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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기

오만과 겸손


<난 늘 가수 마돈나를 지향한다. 그러나 성모, 마돈나를 강요받는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여성일 뿐이다>


순리대로 산다는 건, 어떤 비논리, 직관 등에 나 자신을 맡기는 자세일 것이다. 선택의 순간에 나는 '순리'라는 숭고한 운명 앞에서 '좌절'을 합리화해 왔다. 많은 선택이 그러했다고 본다.

나는 돈을 벌고 싶었다. 그래서 드라마 작가 공부를 시작했다. 돈버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고 포장해 왔지만 실은 제대로 돈을 벌고 싶었다. 그런 결심을 하기까지 고민과 선택의 시간이 짧았다. 때문에 불안했다. 중도에 포기할까봐 주변 사람들에게 소문도 냈다. 그 길이 쉽지 않다는 걸 아는 지인들은, 혹은 나의 이런 터닝이 생뚱맞다고 생각한 친구들은회의적이면서도 나의 희망에 긍정하는 친절함을 보여주었다. (맘속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어쩌면 회의적이라는 사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입에 발린 추임새를 넣기도 했다. 역시나 그분들도 고맙긴 매한가지다.


나는 아카데미에서 6개월 공부했다. 생활비를 벌어야 해서 맥도날드 알바를 했었다. (지적노동이 아닌 육체노동을 하겠다며 뛰어들었으나, 나의 관념적인 오만이 부끄러웠다)  처음 시놉을 제출할 때 강사의 환심을 사기도 했으나 대본을 쓰면서 좀체 실력이 늘지 않아 지적을 당해왔다. 나는 수료 후에도 몇개월간 몰아서 드라마를 보고 대본을 고쳤으나 제자리였다. 쓰는 동안, 상상하면서 즐거워했으나 생활의 압박은 이내 창작의 즐거움을 앗아갔다. 정확히 말하면 드라마를 쓰는 일이 나의 다른 고민을 우선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변명을 하나 하자면. 드라마 창작을 공부하면서 한국 스타시스템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작가세계에 적응할 자신을 잃었다. 공모에 당선되도 소재만 빼앗기는 일이 일반사고, 인맥을 통해 기획사에 들어가는 방법이 가장 안전하지만 유명작가의 그늘에서 오랫동안 고전해야 한다는 것.(이건 좀 젊었다면 그리 문제가 되지 않겠지), 무엇보다 몇편을 잘 쓰다가도 한편의 시청률 하락이 작가로서의 마지막이라는 것. 그것을 알기 때문에 시청률 땡기려는 글이 나오거나 혹은 후배작가 양성 시스템보다 기성 작가의 고료 올리기에 열 올린다는 것.

가장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재능이 부족할 뿐더러, 그런 시스템의 어려움을 이겨내겠다는 오기도 부족하다. 그런 내가 전업 드라마 작가가 된다는 게... 참.... 혹자는 그럴 것이다. 고작 1년도 안해보고 그러냐고... 내게 오기가 있다면 아마 실력이 없어도 성실성 하나로 버티겠다고 다짐했을지도 모른다. 

난 결국, 직업 때려치우고 단기간에 전업작가가 되겠다는 야심을 접고, 생활인으로 돌아가서, 몇년이 걸리든, 공모전을 기다리고 공모하고 당선되면 좋고 안되면 또 공모하는 몇만이 될 줄 모르는 그런 예비작가가 되기로 했다. 

그래, 늦깍이 예비작가 말이다.

다시 생활로 돌아온다. 배운 게 도둑질이다. 

완벽한 터닝을 위해 2년 세월을 보냈지만 허무하지 않다. 그동안 나는 예년보다 다양하고 많은 책을 접했다. 조금씩 조금씩 세상을 보는 눈도 변화했다. 무엇보다 미신적 음모론이나 비과학적 잡설에 혹하던 예전의 나를 깊이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5년간 주민운동 비상근 트레이너로 활동해왔다. 이제 본격적으로 상근 트레이너 활동을 하고자 한다.
빈민을 중심으로 조직화했던 예전의 주민조직에서 여성,장애인,지역,경제,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주민운동에 대한 가치와 철학을 안내하고 조직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너무 무겁고 버거운 활동이어서 상근은 상상도 하지 않았지만 몇권의 책은 주민운동을 다시 바라보게 해주었으며 새로운 질문을 실천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다.

생글생글 웃지만 짧은 시간에 친해질 수 없는 독특함, 상대방을 배려해서 돌려야 할 말을 직설적으로 뱉어버리는 말투, 좋아하는 사람을 너무 티나게 좋아하는 것. 조직한다면서 무리와 집단을 싫어하는 무남독녀 특유의 '천상천하유아독존'식의 생활태도.... 나는 괜찮지만 함께 일할 사람들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내가 포기할 수 없는 것. 자유, 토현, 책, 생활비가 모든 선택의 근거이다.
그리고 그 네가지는 무거운 '책임'이라는 댓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포스팅도 제대로 못하면서 고민이 길었던 시간이었다. 

방황하는 별, 마돈나. 오만의 강을 건너 '겸손'할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