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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공부

실패하지 않는 사랑을 위한 책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드 보통 ,청미래,2002>

알랭드 보통은 철학자다. 이책은 소설과 철학적 사유가 엉킨 글이다. 롤랑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이 사랑의 거리두기를 요구한다면 이책은 아무리 거리두려해도 낭만적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연애의 불가피성에 대해 분석적으로 기술해놓았다. 보통은 정말 보통스럽지 않은 친구다. 고작 20대 후반에 이런 통찰력을 발휘하다니. 읽는 내내 기억에 묻어두었던 각종 연애들이 파노라마가 된다. 롤랑바르트가 사랑과 관련한 상징적인 언어를 폐부 깊숙히 찌를듯한 날카로운 말들로 문학작품 예시를 들어가며 보여줬다면, 알랭드 보통은 진부하기 짝이없는, 그리고 누구나 겪어봤을 법한 연애를 통해 기승전결을 분석한다.
18장 낭만적 테러리즘은  서서히 싸움을 시작하는 연인들에게 '스톱'을 외친다.

- 본문중
테러리즘의 핵심은 그것이 일차적으로 주의를 끌고자 계획된 행동이라는 것이다. 군사적 기술과는 관련이 없는 목표를 앞세운 심리전의 한 형태이다. 수단과 목적 사이에는 모순이 있다. 삐치는 것 역시 삐치게 된 사건과는 별 관련이 없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이용된다. 내가 열쇠를 잃어버렸다고 비난하는것 때문에 "너에게 화가 났다는 나는 네가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났다"는 폭넓은 메세지를 상징한다.


작자와 여친은 호텔의 열쇠를 서로 갖고 나오지 않았다는 사소한 이유로 말다툼을 하지만, 여친의 주머니에서 열쇠가 나오자 여친이 사과한다. 그러나 작자는 여친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심하게 화를 내며 혼자서 가버린다. 이때 작자는 열쇠를 잃어버린 사실 때문에 화를 내거나 여친을 비난한게 아니다. 그 전에 뭔지 모를 여친의 거부, 혹은 여친의 마음변화에 대해 공포를 느꼈기 때문이다.

- 본문중
일반 테러리스트들은 건물이나 초등학생들을 폭탄으로 날려보냄으로써 이따금씩 정부로부터 양보를 강요할 수 있지만 낭만적 테러리스트들은 접근 방법이 근복적으로 일관되지 않기 때문에 실망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낭만적 테러리스트는 말한다. "너는 나를 사랑해야 한다. 너한테 삐치거나 질투심을 일으켜서 나를 사랑하도록 만들겠다" 그러나 여기에서 역설이 생긴다. 만일 상대가 사랑으로 보답한다면 그 즉시 그 사랑은 더렵혀진 것으로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낭만적 테러리스트는 이렇게 불평할 것이다. " 내 강요때문에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면, 나는 이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사랑은 자발적으로 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낭만적 테러리즘은 자신의 요구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그 요구를부정해 버린다. 테러리스트는 결국 불편한 현실, 사랑의 죽음은 막을 수 없다는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인상적인 부분은 여자친구인 클로이에게 버림받은 작자의 사유다. 버린사람은 악으로, 차인 사람은 선으로 규정하는 윤리적 사고방식으로 이별을 마주한다는 것. 더구나 차인 사람이 오히려 배신한 애인을 다독이며 마치 예수적 사랑을 펼치는 듯한 행위도 한다는 것. 그럼으로써 배신한 애인은 더욱 자신의 행위에 대해 죄책감을 느껴 몸부림 치게 되고 차인 사람은 뒤돌아서서 떠난 그녀는 사랑할 가치가 없다고 자신을 위한한다. 비열한 자기방어라고나 할까?

사랑하고 이별하고 다시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생명을 가지고 있는한 불가피한 인생의 여정이다. 이 책을 통해 지혜를 얻었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사랑앞에 절절매는 우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다만, 자살을 통해 배신녀에게 고통을 가함으로써 강한 복수를 꿈꾸기도 하지만, 혹은 아예 모여가수의 노래처럼 '다신 사랑안해' 외치며 금욕주의적 수도생활을 결심도 하지만, 어느순간 파티장소에서, 모임장소에서, 세미나장소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 누군가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린다는 사실이다. 그럼으로써 연애 대상자가 남기고간 흔적들이 서서히 희미해지고 언제 그랬냐는듯 정열을 불태우며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것. 사랑은 패턴이고, 이별에 슬퍼하되, 미래를 낙관하라는 메세지가 이책에는 있다. 사랑하고 있다면 이책을 읽어보시길. 다만, 제목이 철학적 사유를 모두 대변할 수 없을 정도로 가볍다는거, 표지도 좀 촌스럽다는게 걸리지만, 첫장을 펼치는 순간 단숨에 읽어내려갈 것이다.

롤랑바르트와 알랭드 보통이 만났다면 밤새 술퍼마시며 사랑을 논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