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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섹스/그여자

재활용통으로 가야할 것은 사디즘

청소하려니 여기저기 옷이 널브러져있다.
옷걸이찾아 헤맬정도로 옷이 너무 많다.
덥다. 행거째로 재활용통에 넣고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필이 꽂혀서 구입했고, 한때는 샴푸로만 옷을 세탁했다.
올하나 나갈새라 초조하던 옷들. 정육점 벌거벗은 고기처럼 행거에 주렁주렁 달려있다.
사랑해주지 않아서 더욱 꼬깃꼬깃해진 옷가지들.
다시한번 걸쳐보려고 해도 왠지 내가 가진 것들은 초라해보인다.

상점 쇼윈도에서 빛을 발하던 녀석들이 왜 우리집 행거에 걸리면 초라해지는지.
다리미질도 소용없다. 더이상 몸에 걸치기가 짜증난다.
어쩌다 길거리에서 나와 똑같은 옷을 걸친 사람을 발견하면 나름 괜찮아보인다.
그 옷이 그렇게 괜찮은 옷이었나 싶어,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걸쳐본다.
흠. 괜찮다. 내가 소유한 것들이 왜 초라해보일까.

"넌 따오기 같다. 보일듯이 보이지 않아. 그래서 힘들어. 넌 사랑할 자격도 사랑받을 자격도 없다" 남친이 내게 그말 한마디 던지고 완전 센 싸다구를 날리셨다. 생전처음 별을 보았다지.학교 운동장에서 농구공을 만지작 거리던 그를 보고 우리과 아이들은 내려가서 구경하자고 했다. 난 시큰둥했다. 아이들 손에 끌려 구경가보니 얼굴은 별로다.
여하튼 100미터 미남임엔 확실했다. 영문과 계집애는 술에취해 남친에게 구애하기도 했다. 사귀는 내내 내가 딸린다고 친구들은 지랄거렸다.(그때 생각하니 격한 용어가...)
여하튼 그 농구공 아이는 내 행거에 걸렸다.
그 길던 다리가 왜이리 짧아지는지. 그리고 허리는 왜 이렇게 길지?
목소리는 갈라지고 높은 톤에 멀리서 소근대도 그녀석이 나타난걸 알 수 있다.
휴가때 오면 짧은 머리가 창피했고, 도무지 미래를 고민하지 않고 나에게 올인하는 모습이 무능력해보였다. 꿈도 야망도 없고 .... 등등등.
난 서인영보다 더욱 정신병적으로 조증과 울증을 반복했고, 거기다 아무리 다림질해도 초라해보이는 남친을 재활용통에 버리고 싶은 용구가 솟구쳤다.
그러나 싸다구 맞으니, 오히려 개운했다. 마조히스트가 이런 기분이겠지?
사디즘과는 거리가 먼 행거속 남친은 뚜벅뚜벅 제발로 걸어나가 예쁘고 발랄한 여자후배와 결혼했다. 그런데 괜찮아 보인다. 아니, 그래서 괜찮아보였다가 맞겠지.

남주긴 아깝고 내것은 싫다? 란 감정은 이런것이었나?

그 싸다구는 내 인생의 획을 그었다.
옷걸이에 걸린 것들을 사랑하라.
너의 추위를 감싸줄것은 이미 값이 지불된 행거속 옷일지니.
행거도 옷도 제자리다. 다만, 소유한 것에 대한 지나친 사디즘적인 당신의 질낮은 정신세계가 문제일뿐.

오늘같이 더운날
옷걸이의 옷을 매만지며
사랑하겠다고 결심한다.
먼지라도 털어드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