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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기

복남이 귀족만들기


복남이는 복이 덩쿨째 굴러왔다고 복남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작년 여름, 부모님댁 옥탑방 문을 열자마자 튀어나온 복남이. 그러니까 그 녀석은 길을 잃고 헤메다 옥탑까지 올라와서 그 방에서 벌벌 떨고 있었던 겁니다. 보아하니 어느집에선가 귀하게 자란 녀석이 틀림없었습니다.

개주인이 혹시나 복남이를 알아볼까봐, 부모님은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는 것을 만류하셨습니다. 휴대폰 사진을 찍어 동물병원 원장에게 보여주니 시추라고 했습니다. 생후 3개월 추정. 복실복실한 털과 눈물 그렁그렁한 눈빛에 반해 나는 매일 그녀석을 품에 달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정이 들면 들수록 개주인의 상실감이 전해지는듯 했습니다. 죄책감에 몸을 떨던 나는 급기야 결심했습니다.

"어머니, 개사진을 찍어서 찾아가라고 광고문을 붙여야겠어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아라. 한번 들어온 개는 내보내지 않는법"
"그런게 어딨어요? 개주인은 얼마나 슬프겠어요"
"절대 안돼. 절대 안돼"

실갱이를 벌이고 있는데 3층에 사시는 이모님이 올라오셨습니다.
"뭐여 이게?"
"개예요"
"옴마, 이를 어쩐디야. 어느 아가씨가 찾아와서 강아지 못봤냐고 하길래, 못봤다고 돌려보냈는디?"
"거봐요. 주인이 애타게 찾잖아요"
"우리가 잘 기르면 되지 뭘 그런다냐"

시추 복남이는 그 이후로 부모님댁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광야와 같은 옥상에서 뛰어다니며 족발을 쪽쪽 빨며 길러졌지요. 복실복실하던 털은 어느덧 양떼목장의 양들처럼 먼지와 뒤범벅이 되어 떡진머리가 되어가고 있었지요. 아, 떡진머리 복남이. 사료보다 발풀떼기에 강한 식욕을 느끼고, 사람에게 안기기 보다는 짖어대기 일쑤였습니다. 마치 자기가 진돗개인양 의연한 자태로 변화해가는 우리똥개 복남이.

그리고 10개월 후, 부모님은 장기간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나 또한 한 5개월만의 상봉이었지요. 원래 어려서부터 개를 싫어했던터라, 반려동물에 쏟는 사람들의 정성을 아니꼽게 생각했던 나는 빈집 문을 열고 사료나 한바가지 퍼주고 돌아설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복남이는 나를 기억하는지 하루종일 굶었으면서도 사료는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펄쩍 뛰어 내 무릎에 찰싹 달라붙습니다. 떡진머리를 하고 달라붙은 녀석의 몸에는 비린내로 가득하고 정말이지 만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복남이가 내게 말을 겁니다.

"사랑받고 싶다고요"

난 발길을 돌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지요. 당분간 우리집에서 돌보겠다고 말이지요. 번듯한 개줄도 없고 광야의 옥탑을 벗어나본적 없는 녀석은 실내에 들어오자마자 폐쇄공포증을 느끼는듯 했습니다. 마룻바닥에서 미끄러져가며 계속 뱅글뱅글 돌며 지랄발광을 하는 겁니다. 다시 옥탑으로 돌려보낼까 생각했지만 우선 목욕이라고 시켜야겠다 싶어 욕실로 들어갔습니다. 인간샴푸로 거품을 내고 샤워기로 헹구는 동안, 녀석은 바들바들 떨며 내게 말을 겁니다.

"도대체 이건 뭐하는 거죠? 저를 죽일셈인가요?"
"복남아, 이건 샴푸라는 거야. 넌 오늘부터 집안에서 귀족으로 거듭나는거얌"
"귀족이 뭔데요?"
"글쎄 뭐. 귀족까진 아니더라도, 똥개에서 반려동물로 신분상승하는거지. 남들 하는것 처럼 우아하게 산책도 하고 개껌도 씹고, 예쁜 목걸이도 달도 다니자. 아, 그리고 옷도 입고, 어쩌구저쩌구"

애완동물을 자식처럼 생각하던 사람들을 한심스럽게 생각했던 내가, 산책길에 개를 안고 오는 사람들과 강한 연대감을 형성할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여튼, 개를 한번도 길러본적 없는 내가 목욕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자, 이젠 내가 샤워할 차례. 욕실 문을 닫고 옷을 벗는데 복남이가 문밖에서 끙끙거립니다. 혼자된다는 느낌이었던지 흐느꼈습니다. 그래, 알았다. 문을 열고 샤워하마.
그런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집안에서 동물을 길러보지 않은 나로서는 누군가 지켜보는 가운데 샤워를 한다는게 익숙치 않았던 거지요. 개가 지켜보는 가운데 샤워라... 왠지 좀.  더구나 복남이는 수컷인데.....

샤워를 마치고 오니 복남이가 거실 한복판에서 똥을 누고 있었습니다. 똥 치우는거야 문제가 아니지만 그녀석의 밑을 닦아주는건지 내비두는 건지 알 수 없었습니다. 네이버지식인에 물어볼까 하다가, 장난치는줄 알고 답변이 없을까봐 그냥 내비두기로 했습니다. 동물이 뭐, 언제부터 밑닦고 살았나?

하지만, 정말 궁금하다. 똥을 누고 나며 밑을 닦아줘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