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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공부

무례한 복음


 


무례한 복음: 이택광의 쾌도난마 한국문화 2008-2009
저자 이택광 지음 /출판 난장 펴냄 | 2009.07.24 발간



난 틀리지 않았다.
문화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 다를 수 있다. 외면하려고 해도 정치적으로 발현되는 그 유기성에 달라붙어 있는 개인으로서 뉴스를 보며 한마디 개인적 사유를 던지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나 또한 촛불집회부터, 용산집회에 참여하던 개인으로서 그 현상에 대한 의문이나, 혹은 사유를 토해놓은 적이 많았다. 그러나,"에헤~ 틀린소리"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틀린 소리가 아니라 모르고서 하는 소리라는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이택광처럼 해외에서 공부한 유학파도 아니요, 논리적 언변으로 좌중을 감동시킬 혓바닥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쪼그라들기 마련이었다. 그때, 핀잔의 근거는 나의 시선이 구조적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참고로 내 주변은 죄다 운동권이다. 너무도 개인적으로 들렸을 나의 어설픈 해석들이 이택광의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확인하니 안심이다.

촛불시위 당시 폭력비폭력 논쟁이 있는 한중간에서 어느 아저씨와 목소리 높여 싸우기도 했던 나는 뒷목이 내내 뻐근했었다. 왜 우린 이런 논쟁을 하는거지? 깃발아래 모였음에도 왜 한목소리가 아닌거지? 하는 의문.  진보세력이 축배를 들고 싶었으나 거품빠진 맥주잔을 빤히 들여다본 심정과 비슷했으리라. 안전과 안정을 희구하는 도시 중간계급의 불안이 촛불시위를 만든 동인이었다는 이택광의 글은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줬다. 

대중의 욕망에 근거한 그의 문화비평은 새롭다기 보다, 막연히 느껴왔던 많은 개인들의 욕망을 속시원히 글로 표현해줘서 감사하다. 심리상담사나, 정신과 의사 앞에서나 주고받을 만한 철처히 개인적인 욕망이 문화현상으로 그리고 정치적 담론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왜, 진보세력들은 미처 인지하지 못했을까.
진화하는 개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진보정당의 폐쇄성이 드러난 지역의 갈등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나의 오만함을 반성한다.
막돼먹은 영애씨를 제외하고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 거의 1년이 넘는 세월이다. 각종 미디어와 인연을 끊은지도 꽤 됐다. 그리고 그걸 자랑삼아 말해왔다.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 드라마를 경멸해오다니 아이러니다. 그러나 그건 내가 대중문화를 만들어가는 주체가 아니라 그 속에 예속되어 춤출 수밖에 없는 허수아비였음을 인정하는 꼴이 됐다. 굳이 자발적 외면을 하지 않았어도 됐다. 영향을 받지 않을 자신감이 결여된 탓이었으리라.
대중문화는 대중의 욕망의 바로미터라는 이택광의 설명은 나를 반성케 했다.
얼마전 김현진의 '누구의 연인도 되지마라'는 에세이집을 맹렬히 비난한 것도 좀 반성한다. 글의 내용이나 그녀의 생각이 아닌, 어떻게 이런책이 인기가 있을 수 있지? 라는 나의 오만한 비난 말이다.
대중을 경멸한다고는 말하지 않으면서 계몽의 대상으로 인식해 온 운동권의 한사람으로서 깊이 반성하는 바다. 그 안에 숨은 욕망을 읽을줄도 모르면서 왜 대중은 노희경을 사랑하지 않고 김수현을 좋아하는가? 어려운 영화를 싫어하고 왜 가벼운 것들만 쫓는가?에 대한 경시어린 질문만 던져왔다 뿐인가. 난 남이 하는 스포츠에 관심없다며 고고한척 하면서 월드컵에 열광하는 사람들과 김연아, 원더걸스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그저 나와 분리하게에 급급했던 것이다. 
그속에 포함하지 않은 내가 아니라, 그들의 욕망을 도매급으로 넘겨버리려는 오만한 엘리트주의를 반성하려는 거다.

다시 나로 돌아오면
비교적 가볍게 드라마를 습작할 수 있을 듯하다. 무언가 감동을 쥐어짜고, 반전을 고민하고 기발한 스토리를 억지로 캐낼 일이 아니다. 고민이 필요없는 건 아니지만 자연스런 상상력이 아니라, 과도한 스토리 구성에 들이는 노력은 계몽하고자 하는 대중경멸과 비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저 사람사는 이야기를 편하게 만들어 보기로 한다. 그리고 대중이 그것을 판단케 한다. 욕망을 미리 읽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욕망은 없다가 생기는 게 아니고 심연에 있다가 수면위로 뜨기 때문이다. 그 매개는 대중문화가 자리할 것이고, 그건 매번 결과론에 기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오늘 편하게 잠을 자련다.

이젠 서평 혹은 감상문을 쓰는데 있어서 책의 내용은 되도록 줄이려고 한다. 혹시나 내 블로그에 들어와서 책에 대한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근데, 이책, 참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