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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기

내 몸둥이에 영성을 불어넣어줘

나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주어진 일을 해내기도 했지만 대부분 자발적 성실이었다. 그 성실의 이면에는 절박함이 있었다. 백도절도 없고 돈마저 없는 집안에 형제자매는 커녕 나를 건사할 부모도 없었으니 나를 뒷받침 해줄 유일한 것은 성실이었다.

성실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배신없는 진실이요. 조직에선 아부없는 희망이니 어느새 나에겐 이데올로기이자 종교같은 녀석이었다. (한때 필명을 최성실로 해볼까도 잠깐 고민했더랬다.)

 

그런데 난 직장에서 불편한 존재였고 짤렸다. 분노의 힘을 모아모아서 시민운동에 쏟았는데 동료가 떠났다. 지구력을 뒷받침해줄 관계가 사라지니 재미없는 '의미'만 나를 괴롭혔고 나는 생각했다. '성실'이 아닌가벼.

 

주변의 존경과 인정에 상관없이 묵묵히 주민과 함께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주민운동 조직가들이였다. 선배님들 면면을 보니 일단, 천주교(천도빈), 기독교(기빈협)에 기반을 둔 사람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이 '오라'는 종교에서 비롯된 것인가.

나는 당장 강남향린교회에서 기독교인으로 살고자 맘먹었다. 하지만 주일마다 교회가는 것도 천근만근일뿐더러, 낯선 예배의식.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과 선한 웃음으로 대해야 하는 감정노동. 부끄러움. 낯설음이 불편했다

 

친구 두명만 덜렁 남기고 교회를 빠져나왔다.

 

주말이 참 여유롭고 좋았다. 물론 이전에 성당도 맘먹고 다녔었으나 성인지적 관점에서 신부님과 맞지 않아 그의 모든 강론에 신뢰를 거둬버렸었던 기억이...

리처드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왜곡된 종교인의 부정부패 등을 통해 내가 종교생활을 할 수 없음에 대한 합리화의 장벽을 세웠고 편안해졌고 마구 비아냥댔다. 절대적 존재가 있다는 것도 불편하고 나의 존재를 어떤 다른 존재에 위탁한다는 것도 불편했다.

 

일단, '종교'도 아닌가벼.

 

나이 마흔넷이 되면서 돌이켜 생각해보니 수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 자리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기까지 요상한 인연과 요상한 동시성이 한두가지가 아녔다. 특히 뭔가 날개를 달려고 하면 크고작은 사건사고로 인해 내 인생의 항로를 돌려야 하는 일이 빈번했고. 잘난척좀 하려면 당장 하던일을 그만둘 정도의 일들이 생겨났고. 죽을똥말똥하면 누군가 손을 내밀었다.

 

타인을 모질게 비난하면 나는 어느덧 누군가로부터 그 비난을 받았고. 타인을 맘에 담아 존경하고 좋아하면 누군가는 나를 그렇게 좋아해주었다.

 

'성실'로도 '종교'로도 잘 설명되지 않은 그 무엇이 내 삶을 지탱해 온 것은 아니었을까?

내 마음이, 몸짓이, 생각이, 삶이 버무려져 '영성'이 형성되고 그 '영성'으로 살아온 것은 아니었을까?

 

마침. 박노해 시인의 '다른길'이라는 사진집을 선물받고 펼쳐보았다. 가난을 '풍경'으로 보는 독자로서의 불편함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지의 신 땅을 밟는 발에 정성을 다 하는 사람들. 몇푼 안되는 벌이이지만 품위를 잃지 않는 태도. 노년을 안락함을 효도로 대체하지 않고 기도로 마무리하는  사람들.

난 나의 보잘것 없는 영성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사진속 주연들의 눈빛에서 영성을 느낄 수 있었고. 난 도시한복판 전철안에서 '각성'됐다.

앞으로의 삶은 '감사함'이다. 내 인생의 핵심키워드는 '감사함'.

내 몸둥이에 영성을 불어넣을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