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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기

광인으로 산다는 것

모처럼 용인에 갔다. 혈액투석을 마치고 나온 엄마를 모시고 막내이모, 그녀의 친구 넷이서 한정식을 먹었다. 식탐많은 가족들이라, 한상 푸짐하게 나오는 '시골밥상'집을 좋아한다. 결혼해서 아이낳고 무탈하게 사는 나에 대한 칭찬이 또 이어졌다. '아~ 밥값을 나보고 내라는 뜻이구나' 필이 온다. 내내 조금씩 고개를 끄덕이면 듣는다. 나랑 상관없는 칭찬들, 가령, 이아이는 어려서부터 책에 파묻혀 살았어. 남자들도 잘 안만나고 처녀적부터 얼마나 조신하게 생활했는지 몰라. 결혼해서 시부모님께 잘해서 이쁨받고 살고 있잖아. 일이면 일, 살림이면 살림, 뭐 하나 흠잡을게 없어.

난 그녀들의 칭찬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다. 내가 입만 벙긋이라고 하는 날엔 그녀들의 신념이 무너지고 난 바로 자살을 권유받을지 모른다. 열녀문은 알아서 세워줄거라고 하면서 말이다. 말하자면 한낱 지푸라기같은 사대부 명가집안의 자손으로서 태어나, 힘든 역경을 딛고 보통스럽게 살고 있는 나는 그녀들이 자식을 훈육하는데 좋은 텍스트로 사용되어왔던 터. 그녀들이 나를 쫙 째려보며 "이, 미친년"하고 옷깃을 손바닥으로 쳑쳑 쳐가며 사라진다고 했을때, 난 정말 아무렇지 않게 웃을 수 있는가? 웃는 순간, 난 광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청계할머니에 관한 이야기. 간단히 설명하자면 청계할머니는 정신지체장애인인다. 어려서부터 그 할머니가 곁에오면 피하곤 했다. 잘 씻지 않아서 항상 얼굴이 시꺼멓고, 광대뼈가 유난히 튀어나왔다. 기골이 장대해서 기운이 세다. 이빨이 거의 없는데도 무엇이든지 잘먹고 소화시킨다. 사람들은 그녀를 광인취급하지만, 딱히 그녀를 왕따시키지는 않는다. 일손이 부족할때, 자장면 한그릇만 사주면 궂은일을 다해주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녀와 친구다. 어찌보면 유일하게 엄마가 권력을  갖는 관계여서 그럴지 모른다. 요즘 그녀에게 새로운 사건이 일어났단다.

"청계엄마가 요즘 정신없이 바빠"
"왜?"
"할아범이 생겼거든. 그 할아범 빨래해주느라 정신없어. 가끔 밤에 자고 온다"
"할머니 능력있다. 엄마도 좀 배워"
"야야, 말도 마라, 그런 천치를 누가 좋다고. 그 할아범도 뭐 다를바 있겄냐? 그저그렇지. 뻔할뻔자야"
"그러면 어때. 그것도 능력있는거지. 엄마보다 천배 낫구만 뭘그려"
"내가 밤에 사랑하냐고 물었지. 청계어멈에게"
"뭐라셔?"
"자꾸 원한다는구먼. 에그 징그러"
"흠, 남자는 문지방만 건널 힘이 있으면 섹스를 한다는데, 여하튼 할머니가 요즘 사는 재미가 있겠다"
"할아범이 전화도 놔주고, 일주일에 10만원씩 용돈도 준다네. 청계어멈 살판났지"
"난, 좋아보이는구만 뭘그래. 엄마도 기운있을때 좀 주변을 둘러봐. 괜찮은 할아버지 없는지"
"미친년, 별말을 다하네"

광인에게 편은 별로 없다. 모두 진실하면 광인이 아닌 사람이 몇사람이나 되랴. 내 생각을 거침없이 밝힌다면, 그리고 생각대로 살아간다면, 아니, 미친년 취급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기만 한다면 난 벌써 광인이다. 하지만, 뒤돌아서는 이들에게 초연할 수 없어서 망설이고 있다.

갑자기 발짝이 생각났다. 다들 모여서 발짝의 게시물에 대해 궁시렁거릴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듯이. 근데 좀 석연치 않다. 그는 다른 사람과의 소통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자신은 정말 너무 진실하다고 느끼는것 같다. 그건 뭘까. 나는 정말 그 사람에 대해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가. 그는 다른사람이 어떻게 인지하는데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그부분에는 분명 광인이다. 그렇다면 초인일까? 아님 강자일까? 내가 보기에 그가 사람에 대해 민감하고 예민한건 사실이다. 그리고 어쩜 나이보다 어려보이지만 누군가 자신에 대해 폄하하고 어린애 취급하는 것에 분노하고 있는건 분명하다. 그래서 그는 식카에게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내가 총선에서 그렇게 말을 걸어도 반응하지 않았던것. 알만하다. 난 그에 대해 너무 쉽게 젊은 후배 대하듯 대했고 친절하다고 했지만 그를 이해하려들지 않았다.

분명한건, 그에게 편이 없다는 것이다. 편이 없어도 꿋꿋하기 바란다.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그저 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응원한다. 나도 언젠가 입을 뻥긋하는 순간 광인취급받을게 뻔하고 그럴때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나의 편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하니까.

여하튼, 청계할머니는 오늘도 그 할아버지 집을 방문했을까? 누구는 장애인이라고 누구는 광인이라고 누구는 뻔할뻔자라고 그들의 사랑을 폄하하겠지만, 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