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얼굴들. 나의 부모보다 훨씬 나이든 분들과 함께 지난 5년의 세월을 보냈다. 처음, 3명의 어르신을 고용했다. 본의아니게 난 고용주가 되었다. 하지만 처음 시작하는 실버택배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매일 모여서 넋놓고 회의만 하기를 일쑤. 어쩌다 주문전화 한통화 오면 누가 갈것인지 정하는 것도 숙제였다. 교사출신 어르신은 모두를 가르치려들고, 군인출신 어르신은 진두지휘하려들고, 학자출신은 매번 전략을 짜느라 각자 바빴지만, 정작 홍보도 안되고 주문은 하루에 서너건이 고작이었다.
나는 활동가인지 택배 사무원인지 구분을 못할 정도로 하루종일 주문전화만 기다리고 있는 실정.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주문전화를 받아야 했다. 거래처를 놓치면 안되니까.
개그맨 뺨치는 김모어르신은 100만원짜리 휴대폰을 공중전화부스에 놓고오는 바람에 기업에 최초의 손실을 안겨주었다. 고용주가 물 것이냐, 각자 분담할 것이냐 회의의 회의를 거듭한 끝에 반반씩 나눠서 물어냈다. 여유가 있는 양반이어서인지, 망각이 큰것인지, 아님 수의사 출신이셔서 동물처럼 천진난만한겐지, 동료에 대한 미안함이 그를 위축시키지는 않았다.
학자출신과 교사출신 두분은 매번 으르렁 대며 싸웠다. 오늘 모였을때, 도대체 그때 왜 싸웠는지 내용을 기억하진 못했지만, 여하튼 남녀가 멱살을 잡고 엎어치기하는 최고의 레스링을 보여주셨다. 딸뻘되는 내앞에서 재판을 기다리던 그분들. 내손을 꼭 잡으며 말씀하신다.
"사람이 되어가는 거 같아. 요즘. 마돈나 고맙수"
80을 앞둔분들이 사람이 되어간다니. 3명으로 시작한 실버택배가 15명의 인원으로 늘었다. 사무실도 얻어 분가입주했고, 여직원도 고용했다. 유한회사로 등록한 지 벌써 1년. 팀장님은 대표이사가 되어있었다. 육군대위출신의 리더쉽을 발휘하며 회사를 확장시킨 장본이시다. 군사독재시절이 떠올라 그분의 리더쉽을 매번 의심하고 제동걸고 해왔는데, 어르신은 아마도 그런 독재스타일이 몸에 맞는 옷이었나 보다.
"그때, 솔직히 마돈나는 너무 우리를 내버려뒀다고. 가르쳐주지는 않고 무조건 알아서 하라니.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는줄 알아? 그러니까 싸우고 지지고 볶고 그랬지"
자율성이 오히려 불편한 분들. 그러나 그 자율성은 회사설립의 기쁨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고 본다. 내가 외빈이 되었으니 말이다. 여전히 직급때문인지 내앞에서 머리를 조아리시는 모습이 불편하긴 하다.
처음에 진보정당에 있던 후배가 사무실에 놀러온 적이 있다. 어르신중 한분은 "왜 젊은 사람이 그런데서 일하냐?"며 불만을 토로했었다. 반바지 차림의 후배에게도 "왜 그렇게 옷을 입고 다니냐"며 잔소리도 했다.
그러내 내가 찢어진 청바지를 입거나, 집회니 진보니 떠들때는 얼굴은 일그러졌으나 고개는 끄덕이는 귀여운 모습도 보여주셨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80억은 사회에 쾌척하겠다고 했을때, 삼성기업을 칭찬하느라 입이마르시던 분들.
시민단체 사무실에서 온통 조중동 이야기에 몰입하셨다. 이 사무실에는 한겨레신문만 있어서 읽을게 없다고 불만도 토로했었다. 그들의대부분은 고학력자 출신이었고, 한때 잘나가던 군인출신도 있다.
젊고 잘나갈때, 그들은 독재시절의 많은 혜택을 보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늙고 오갈곳이 없을때, 시민단체를 찾았다. 그들에게 이즘은 뭐였을까? 어쩌면 밥벌이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지 않았을까? 괜시리 보수진보 논쟁이 붙으면 어르신들 꼴보기 싫어서 팩하고 돌아서던 나도 참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들의 이즘이 생활과 밀접하다는 걸 이해했고, 그들은 시민단체가 빨갱이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한자리서 막걸리잔을 돌리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여전히 어르신들은 나를 어렵게 생각한다. 팀장님은 '노사간의 모임'이라는 표현을 하신다. 노사간이라니... 물론 유한회사로 그럴듯한 기업이 설립되기는 했지만, 난 한번도 고용주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다. 고용주라니. 한번도 내손으로 급여를 지급해본적도 없고, 인사권도 전혀 없는 그런 고용주라니.
이곳을 거쳐간 어르신들도 거의 참석하셨다. 싸우고 지지고 볶고 햇으면서도 깔깔대며 옛이야기를 나누니 가슴이 훈훈하다. 사무실 분가준비를 할때, 내가 내쫓는 거라는 소문이 돌아 한달동안이나 나의 인사를 받지 않으셨던 어르신도 오셨다. 참 불편한 오해였으나, 세월이 흐르니 나의 진심은 통했고, 어르신은 참 부끄럽다고 말씀하셨다.
어느분은 또다른 회사를 차려보라고 제안하신다. 오우~ 절대 노우~
난, 당시 머리털이 뭉텅뭉텅 빠져나갈 지경이었다. 도무지 조직화할 수 없었던 어르신의 어려움. 공적이타주의가 전혀없는 분들에 대한 설득의 불가능. 정말이지. 시계를 되돌리고 싶지는 않다.
어르신 한분이 말씀하신다.
"우리가 그간 혜택을 많이 받았으니, 일주일에 한번씩 좋을 일 할 수 있도록 참여좀 시켜주시게. 우리도 노인이지만, 더 어려운 노인을 위해 봉사를 하기로 조직적으로 결정했어"
그들의 변화에 박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