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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6월항쟁 22주년,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기억하고 있을려나?



제목: 폭력경찰
노래: 여고해방전선

벌써 22주년. 이한열 열사 또한 살았다면 40대 아저씨가 되어 있었겠구나 생각을 하니 참 긴세월이 흘렀다.
난 고작 지난해 명박산성만을 기억하며 시청을 찾았다. 80년대 태어났더라면 난 아마 분신했을 거라며 나름 설득력있게 농담을 던져왔던 나는 더이상 그런 말을 입밖에 낼 수 없었다.
그런 농담은 실제로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안전감을 토대로 짓껄일 수 있는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시청 잔디 무대 코앞에 앉으니 왠지 어색하다.
아니나 다를까, 밤새 시청을 사수하려 지켰던 민주당 의원과 야당의원들, 그리고 당직자들이 맨 앞좌석에 포진해있어고 난 서성이다 그냥 무대 잘보이는데 앉았을 뿐인데 서걱거린다. 다른곳으로 옮기자는 선배를 그냥 주저앉혔다.
어차피 오늘의 주인공은 우리들이라고.

독재, 민주주의의 압살이라며 1부 첫순서에서 야당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은 입을 모아 규탄했고 정당 예우차원인지참석한 야당의원들은 당대표로 한명씩 돌아가며 마이크를 잡았다.
정치인들은 역시나 유치한 어린아이들이다. 칭찬하고 띄워주고 스스로 대견해하는 모습이 역겹다.
얻어맞고 죽어간것은 시민이고 그 들끓는 분노앞에서 권력없이 그저 뭉치기만 해왔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의원들도 시청앞에 앉아있을 수 있는 용기가 생긴것 아니겠는가.
결국 노 전 대통령 추모열기에 힘받아서(민주당 의원들도 노 전대통령 탄핵에 서명한 놈이 한두명이 아니었음) 시청광장을 사수하려고 하루 노숙했다는 것을 매번 강조할 필요가 있는가?

용산참사에 참여하는 분들은 미사를 마치고 늦게 합류했다. 유가족들이 연행되었는데 어떻게 됐는지 궁금한데
여기저기 둘러보아도 관련자들을 볼 수 없었다. 인파가 너무 많아서 못찾았을 수도 있다. 오늘같은 날 용산참사는 가장 크게 부각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 무리를 연실 찾아봐도 없다.

문화제가 있기 전부터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은 몇시간 동안 약식 집회를 했다.
4대강 사업 22조원 중 1조원만 공적자금으로 투여해도 몇천명의 노조원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죽던말던 삽질에 들이는 어마어마한 예산에 몰두하는 명박정권은 콧방귀도 끼지 않는다.
헐값에 자동차회사를 넘기더니 자금운용이 어렵다는 이유로 문자하나로 해고를 통보하다니.
해고는 정말 타살이다.

구속된 대학생 벌금모금하는 무리와, 금속노조, 그리고 시민들이 행사시작전부터 모여들이 시작했고 다행히 빼앗겼던 무대와 음향차량을 다시 구해서 무사히 광장으로 들여왔다. 이상하게 전경이 보이지 않는다. 경찰들만 있다.
행사 내내 교통정리만 하는 경찰을 보니 흐믓하다." 그래, 집회때도 그렇게 하는거야"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랬다.

1부에서는 야당의원들의 잔치였고 2부에서는 이상하게 노 전대통령 추모제로 둔갑했다.
사회를 본 권해효씨랑 주최측과 코드가 안맞는건지 아님 진짜 주최측이 이날 행사를 노 전 대통령 추모제로 몰고가는 것이 의아했다.

시청광장의 대부분의 시민들은 추모제와 상관없이 모였다고 본다. 적어도 나부터도 그렇다.
후퇴하는 아니 이전에 이뤄본적도 없는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결연한 각오를 확인하고자 했다.
그간 명박 정권이 군부독재보다 더한 경찰독재로 병풍치고 있을때 그걸 걷어버리고자 하는 열망을 분출하고자 했다.
용산의 문제가 잊혀지지 않도록
그리고 22년전 어렵게 쟁취한 민주주의 제도화를 되새김질 하면서
기억하고 또 기억해서 실천하려고 모인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분노하는건 사실이고 슬픈것도 사실이지만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든다.

주최측에 문자를 보냈다. 용산문제는 언급하지 않냐고, 화가나서 말이다.
"같이 할 예정이예요" 라는 답신이 왔다.
유가족 한분이 나와서 상황을 전하는 것으로 갈음.

행사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시민단체들조차도 무슨 행사가 있으면 국회의원이나 관료들부터 차근차근 소개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단 말인가. 적어도 6월항쟁 기념일에서의 주인공은 시민이었고 독재로 인해 피해받은 당사자/시민/그 다음이 국회의원 차례였어야 하지 않을까? 
강기갑의원이나 노회찬의원이 등장할때 환호하는 진보진영조차 꼴보기 싫었다.
여기가 무슨  콘서트장이냔 말이다.
마치, 원내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니까 이런자리에서나마 많은 시민들이 호응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은 보상심리 때문에 더욱 소리쳐 환호하는 것이다. 별반 다르지 않다.

뼛속까지 스며든 권위주의
토할것 같다. 

맥주로 토나오는걸 달래려 호프집에 갔다.
이런, 전경은 준비하고 있었다.
시청 주변 골목골목을 막고 물대포를 준비하고, 걸어오는 이들을 채증하느라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자식들! 우리는 행사 끝나고 가투는 커녕 술마시러 해산하고 있었다.

완전 새된 전경들
무엇이 분한지, 아니면 당일 실적이라도 올려야 했는지
얼마 남지 않은 시청주변의 사람들을 20명 연행했다.
아마 그들은 주모자가 아니라, 그냥 역 근처에서 집회 마무리 하는 인원들을 마구 잡아들였을 확률이 높다.
귀가하려는데 시청역 주변에서 지위가 좀 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다.

"야! 역 막아"

세월이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고 했던가?
그래, 시청 잔디밭은 오늘을 기억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