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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현재 스코아 '간통이야 간통'

 

첩년의 머리채를 잡아당긴 기분으로 덕훈은 아내와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을 향해 포효한다.

“너희들, 현재 스코아 간통이야, 간통”

요즘 화재가 되고 있는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의 한 대목이다. 2006년 박현욱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남편이랑 절대 같이 봐서는 안되는 영화이자, 영화자체보다, 토론거리를 더 많이 던져준 영화이다. 아내의 결혼 때문에 요즘 인터넷은 뜨겁다. 소설을 읽을땐 축구소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스토리만 걸러서 영화화하니, 축구보다는 아내의 결혼에 초점이 맞춰졌다. 여하튼, 축구, 남자, 결혼은 마초적 가부장제의 중요한 모티브이기도 하다.

덕훈이 그렇게도 당당하게 포효할 수 있었던 것은 ‘간통죄’때문이었다. 법의 이름으로 아내의 사랑을 심판하겠다는 것인데, 역대 철학자들도 헷갈려한 남녀간의 ‘사랑’을 한낱 법으로 처벌하겠다는 덕훈의 대사는 죽은 아들 고추만지는 격이다(물론, 사랑과 성교는 별개라고 한다면 할말 없지만 말이다).


지난 10월 30일 헌법재판소가 옥소리 등이 청구한 간통죄 위헌여부 최종 선고공판에서 "선량한 가족제도 보장을 위한 제도를 위한 것이라고 볼 때 간통죄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볼 수 없다"며 합헌을 최종 선고했다. 간통죄(형법 241조)는 배우자가 있는 자가 간통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즉 자기의 배우자 이외의 남자 또는 여자와 합의에 따른 성교관계를 맺은 경우 이를 처벌토록 하고 있다. 그간 간통죄는 한마디로 바람피우는 남편에게서 아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재산과 양육권을 지키는 최소한의 장치로 길고 가늘게 목숨을 유지해왔다. 여성에 비해 남성들의 혼외정사가 많은 한국의 성문화 특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회는 변했다. 배우자의 성교가 선량한 가족제도를 헤친다는 발상도 우습지만, 형법으로 사람들의 침대속 정사를 다스린다는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법제정을 통해 사전예방의 기능 또한 전혀 못하고 있다. 누가 형벌이 두려워 사랑없는 결혼을 유지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가정파탄의 예방장치라고? 성교를 하면 가정파탄이 되고 플라토닉한 사랑만 하면 파탄이 일어나지 않는가? 세상은 변했다. 성도덕, 윤리관도 변했다.(필자는 도덕, 윤리라는 말도 성앞에 감히 붙이고 싶지 않은 심정이다) 간통죄가 범죄억제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보는가? 과연 죽은아들 고추만지는 심정으로 배우자들은 친히 간통죄를 신고할 것인가? 이미 간통죄를 신고하는 사람들의 심정은 혼인제도를 유지하고픈 욕구 보다는 이미 깨질결혼, ‘독박’이라도 써보라는 심정 아닐까? 간통죄는 이혼을 전제로 한 죄목이니까 말이다. 간통죄까지 간다면 이미 그 가정은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금이 간 상태다.

결국 무서워서 혼외정사를 못하게 하는 억제력을 지닌 죄목이 아니라,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배우자가 복수의 장치, 더욱 중요한 재산권과 양육권을 지키는 장치로서의 효력을 갖는다.


이번 합헌 결정은 아슬아슬했다. 시대를 반영하듯 몇회에 걸친 위헌여부 선고공판에서 이번에는 위헌판결에 가깝게 결정났다. 옥소리가 아니라 남자였다면 어떻게 결판났을까? 예상컨대 쉽게 위헌결정이 났을지 모를일이다. 여성으로 아쉽지만, 다음을 기대할수밖에.


다만, 배우자의 혼외정사 혹은 혼외 사랑으로 상대배우자에게 심각한 상처를 끼쳤을 경우 재산권과, 양육권에 대한 패널티를 주는 법적 장치로 충분하다. 정사로 인한 부부간의 갈등은 둘이 알아서 할 문제이되, 재산과 양육의 문제에 있어 이혼과정에서 패널티를 줄 수 있는 법개정이 필요하다.

‘선량한’ 혼인제도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침대속을 법으로 일일이 관리할 게 아니라, 결혼이라는 제도로 인해 ‘내것’이라는 왜곡된 소유욕을 버려야 한다. 같이 살지만, 내것은 아니다.

정말 한마디 더 하고 싶은 말은 오늘날, 국가의 권력은 억지로 유지되는 결혼을 순조롭게 해체할 수 있도록 도와서 국민이 행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아나키의 한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