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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공부

폭력론 - 이닥


    대지의저주받은사람들
<프란츠파농/남경태옮김/그린비>

식민화한 인간은 ‘순응’과 ‘정신분열’이라는 무서운 지병을 갖게 됩니다. 그것은 국가가 제대로 작동하는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효율적으로 중앙권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독재, 초고속 경제적 성장의 이면엔 식민화한 의식이 우리폐부 깊숙이 똬리 틀고 있었습니다. 우울한 일이지요.

 ‘정의’를 이야기 하면 ‘왕따’ 당하는 한국사회의 이러한 병폐는 일제강점기가 남기고 간 표백된 알제리인들(친일파 지식인)이 정권을 잡으면서 더욱 고착화했습니다. 정치적 해방이 진정 우리를 탈식민화했다고 말 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아직까지 원주민으로서의 화끈한 저항을 성공적으로 경험해보지 못한 우리는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을 통해 폭력의 영향과, 정당한 폭력(?)를 통한 국가와 민족의 해방, 나아가 존재 자체의 탈식민화에 대한 성찰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프란츠 파농은 “식민화된 인간은 자신의 골수에 깊이 감춰진 이 공격성을 자신의 동포에게 터뜨린다. 이럴 때 흑인들끼리의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식민지시대의 인간이 억압자에 대한 폭력성을 억압자에게 직접적으로 발현하지 못할 경우 내면화한다는 뜻이겠지요. 개인적 내면화는 정신질환이 되고, 정치적인 내면화는 엉뚱하게도 피억압자끼리의 공격을 통해 파멸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다큐멘터리 ‘할매꽃’(2008, 푸른영상)은 식민화시대의 원주민이 폭력을 내면화했을 때의 문제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전라남도 산골의 한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계급, 이념간의 갈등, 살인, 집단학살 등에 대한 현대사의 비극을 가족 안에서 발견하고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동네는 아직까지 반목하고 있습니다. 이 마을은 일제시대에 억압자인 일본을 향해야 할 총부리를 동족에게 겨눕니다. 죽고 죽이는 가운데 작은 외할아버지는 정신병으로 자살을 합니다. 

그렇다면 치유로서의 폭력은 가능한 일일까요? 프란츠파농은 “원주민은 무력으로 이주민을 몰아냄으로써 식민지 노이로제를 치료한다”고 했습니다. 무력은 폭력의 한 형태고 그것은 치유가 될 수 있다는 표현이겠지요. 이때, 우리는 폭력과 비폭력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프란츠파농은 식민지민중의 폭력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식민지 민중으로서는 폭력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폭력에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성격을 부여하게 된다. 폭력의 행사는 그들을 한 덩어리로 묶어주며, 각 개인은 폭력이라는 커다란 사슬의 고리들이 된다. 이 거대한 폭력의 유기체는 이주민이 처음에 행사한 폭력이 크면 클수록 덩치가 커진다”
하지만, 폭력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상황을 전제로 했을 때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이겠지요. 그때의 무력행사는 저항, 혹은 테러라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을 듯 싶습니다.

그렇다면, 원주민의 무력행사(폭력)는 어떻게 조직화할 수 있을까요?


멕시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부사령관 마르코스는 새로운 식민지 상황 즉,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저항의 상징입니다. 그는 특유의 문체로 책도 냈으며 인터넷을 통해 선동하는 재주를 가진 게릴라입니다. 권력장악을 목적에 두지 않는 순수(?)게릴라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조직된 원주민의 자발성에 대해서는 의심해볼 여지가 있습니다. 

프란츠 파농은 지도부를 농촌으로 보내 민중을 정치적으로 교육한다든지 민중을 자각시켜 주민을 더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고 합니다. 부르주아지의 지배기 동안에 그들에 의해 수립된 구조에서는 어떤 변환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순교자나 지식인, 혹은 지도자의 죽음 등으로 선동할 수 있다고 봅니다만 궁극적으로 의식화한 민중의 자발성을 중요시합니다. 탈식민화란 어떤 종의 인간을 다른 종의 인간으로 바꾸는 즉, ‘변태’의 과정입니다. 선동이나, 혹은 1인의 영웅의 환타지 때문에 만들어진 조직화는 근본적인 탈식민화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도자가 필요 없다’가 아니라 어떤 지도자여야 하는가가 중요하지요. 지도자는 이식된 지도자가 아니라, 주민의 자발성 안에서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지도자여야 합니다. 

민중은 혹은 이 책에서 주로 언급된 농민은 본인의 이해관계에 충실합니다. 결국, 본인이 겪는 문제로부터 출발해서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경험을 갖는 게 중요합니다. 분노를 조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른 공간의 분노나 혹은 다른 계급의 분노를 가지고 와서 공분하게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눈앞의 빵과 이익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합류하거나, 선동 때문에 단기간 반짝 불타오를 수는 있어도 진정 뿌리까지 바꾸는 데는 불가능합니다. 식민화로 인한 분노도 자신의 것이어야 하고, 그 분노에 대한 표출도 자신의 몸짓으로 해야 합니다. 자신의 근육에 이입된 몸이 기억하는 저항, 그것이야 말로 역사가 되는 것이겠지요.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근육에 새겨진 저항의 경험은 미천하기 짝이 없습니다. 물론 80년대 광주민주화운동이나 87년 610항쟁 등 굵직한 저항의 경험이 있긴 합니다만, 지배의 종류가 달라졌을 때 작동하지 못하는 원인에 대해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광주시민은 예외지만, 학생이나, 노동자, 넥타이부대가 대신해준 민주화의 경험은 가난하고 무지한 사람들 대다수에게는 대리체험일 뿐입니다. 대리체험자가 싸울 대상을 잃었을 때 저항이라는 행위자체가 맥 빠지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폭력도 자발적이어야 합니다. 폭력이 분노의 발현, 저항의 형태라고 했을 때 이를 직접 경험한 사람들은 자긍심을 갖게 되고,  식민화로 인한 개인적, 사회적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피억압자의 목적은 억압이나 지배를 종식시키는 데 있지만, 자신 안에 심어놓은 모든 거짓을 제거하는 데도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프란츠 파농이 ‘유럽을 버려라’라는 한마디에 함축되 있다고 봅니다. 억압자로서의 위치에 대한 선망을 버리라는 의미 아닐까 싶습니다. 억압자에게서 해방하고픈 열망이 클수록, 그 억압자를 닮고 싶은 것 또한 인간의 욕망 아니겠습니까?
프란츠 파농은 해방이후를 염려했던 것 같습니다. 유럽의 지배를 받았고, 그 유럽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했으나, 결국 자유를 획득한 후, 폭력과 억압을 행사한 주체를 닮고자 하는 식민지 국가의 민중은 진정한 해방이 아닐 테지요.
피억압자로서의 유경험자는 억압자를 부정하면서도 억압자를 닮고자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억압자에 대한 끊임없는 열등감의 발로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버려야 할 그 ‘유럽’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