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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펌글] 노랑풍선 탄압,mb는 풍선도 무섭냐?


5,000개의 풍선 날리는 일에 작은 일손이나마 보태기 위해 덜려간다는게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게
평화 박물관에 도착했습니다.(죄송)종각역에서 탄원서에 서명 받는 분들과 풍선 나눠주는 분들이 먼저 눈에 띄어
늦게 도착한 마음이 더 미안하고 죄송스러워 성급히 들어선 평화박물관 안은.....이미 수 백개의 노란 풍선들로 천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여기 저기 분주히 풍선에 가스를 넣고, 줄로 묶고 계신 선생님들 틈에서저도 열심히 풍선을 묶고 헬륨 가스를 넣었습니다.저랑 같이 일하던 선생님은 짧게 자른 손톱 때문인지풍선을 묶다가 손톱사이에서 피가 나셨지만 그래도 쉼 없이 풍선을 묶으셨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부당한 징계가 철회되고 더 많은 시민들이 우리의 뜻을 알 수 있다면 상관없다는 듯이......5,000개의 풍선을 날리기 위해서는 5,000개의 풍선에 헬륨가스를 일일이 넣어야 하고,그걸 다시 묶어야 하고,그걸 다시 끈으로 묶어야 했습니다.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선생님들이 함께 하는 그 일은 차라리 행복했습니다.풍선을 1~2차례 종각 앞 탄원서 서명 받는 곳으로 나르고 다시 풍선에 가스를 넣고 묶기를 1시간 넘게 진행했을 무렵,평화박물관 입구를 전경들이 봉쇄했다는 소식이 들리더군요.
안에서 일하면 선생님들과 화들짝 놀라 나가보니 골목 입구는 벌써 전경들로 꽉 채워지고  건물 주차장과 야트막한 담으로 분리되어 있는 박물관 입구는 경들이 쭉 에워싸고 있었습니다.여러 분의 선생님들이 항의하고 설득도 해 보았지만 과 골목을 둘러싼 의경들은 꼼짝을 하지 않았고,오히려 경찰들은 포위 인원을 점점 늘리며 우리를 압박해 오기 시작했죠.나중엔 청바지에 헬멧을 쓴(80년대 백골단을 연상시키는) 경찰 기동대를
대기시키기도 했더군요. 실랑이가 계속되면서 많은 기자들이 모이고 권단체 활동가들도 달려와 골목 바깥에서 경찰들에 항의하면서 지나가던 시민들도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풍선 하나 때문에 이렇게 싸웠다는게 믿겨지십니까?? MB가 무서워 하는 것 중에 하나, '풍선' 추가입니다.. 이때 누군가 조금만 밀어붙이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했고 러 선생님들이 풍선을 들고 다시 골목 입구에서 경찰들과 대치하던 중 둑괭이 선생님이 맨 앞에 있다가 의경들 사이에 갇히게 되고 닥에 앉아 계속 길을 열어 달라고 얘기하던 도둑괭이 선생님이 신하셨다는 얘기가 들려오고 경찰이 응급실로 후송했다는 말도 들려왔습니다. (이 와중에 우리를 돕기 위해 건물 담에 올라갔던 시민 한 분도 담에서 떨어져 다치는 일도 있었습니다.)하지만 결국 그들이 후송한 곳은 병원이 아니라 종로경찰서였죠.
이후 인권활동가들과 민변소속 변호사들이 항의방문을 했으나 히려 그들은 도둑괭이 선생님을 노원경찰서로 옮겨 버렸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풍선을 밖으로 옮겨보려 했으나 경찰들의 방해 때문에 이미 수백 개의 풍선이 날라 가거나 찰들에 의해 터져 버린 후였습니다. 홍구 교수의 중재로 우리는 일단 풍선을 가지고 나오지 않기로 하고 찰은 봉쇄를 풀었습니다. 단 맨 몸으로 다시 종각으로 돌아왔다가 1시간 후 쯤 찰이 느슨해진 틈에 만들어 둔 풍선을 다시 옮겨 올 수 있었죠. 생각해 보면 나중에 만든 풍선 다 가지고 올 수 있었는데, 찰은 왜 그렇게 막은 것인지.....) 드디어 12시 새해를 알리는 타종이 있고 백, 수천 개의 노란 풍선이 하늘을 날았습니다.새벽 3시경 도둑괭이 선생님이 풀려나셨고 리는 뒤늦게 대학로에서 도둑괭이 선생님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새해가 와도 왠지 새해가 온 것 같지가 않더군요. 해가 왔는데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을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마음이었습니다.하지만 새해를  정의를 외치고 불의에 맞서는 분들과 함께 을 수 있었음은 분명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어제 인사를 나누진 못했지만 함께 풍선을 만들고, 함께 싸웠던 많은 선생님들 반가웠구, 감사했습니다. 생님들이 있어, 그리고 도둑괭이를 비롯한 일곱 분의 선생님이 있어 009년 더 힘차게 살아야겠습니다.

출처 :초등중부성북지회 원문보기 글쓴이 :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