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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정치도 연애다


농담도 하고 술도 마시고 손도 잡고 그러다 점점 서로 매력을 느껴 사랑에 빠지게 되는건데 그런데 진보정당의 방식은 이런식이야.

처음 만난 상대 앞에 재무계획서와  신혼방  설계도를 딱  꺼내놔. 그리고 입주할 주택의 입지조건과 구입할 차량의 대출조건 및 주변 교육환경의 우수성에 대해 부동산 금융,  교육전문 용어를  섞어 진지하게 프레젠테이션 하지.

그런 다음 건조한 표정으로 바로 결혼하재. (웃음) 만약 나와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속물이라 더 큰 집과 더 큰 자동차에 넘어간 반증이라며. - 중략 -

프로포즈가 실패한 요인을 열심히 분석하다가 입지조건과 대출조적의 우수성을 다른 경쟁자보다 선명하게 부각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혼자 결론 내리지(웃음). 그렇게 연애 한번 못해봤으면서 꼭 결혼할 거라고 혼자 다짐을 하지. 20년 후에. 아. 슬퍼
                                                                                                                        (닥치고 정치, 2011, 김어준, 푸른숲)


서울은 10월 26일 시장선거로 뜨겁다. 2000년 낙선운동, 노무현 대선, 탄핵정국, 촛불집회, 그리고 이번 시장선거는 일반 무당파 시민이 움직인다는데 표면적 공통점이 있다. 그때마다 어떻게 하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까 들뜬 맘으로 열심히 뛰는 진보정당이 있었다. 시민의 자발적 움직임이 가장 큰 힘이었겠지만 앞뒤에서 물심양면으로 조직화하고 체계화하려고 노력한 진보정당 사람들. 그러나  끝나고 나면 건지는 거 없이 일회용 휴지처럼 버려지곤 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기존 정치질서에 대한 안티가 노무현을 낳았듯 덩달아 그 바람의 수혜자로 잠깐 10명의 국회의원을 탄생시킨 진보정당. 원내에서 어느 의원보다 국가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했던가. 그런 숭고함 따위를 왜 대중은 몰라주는 걸까. 그동안 섭섭하기도 했고 지역에서 진보정당끼리 물고 뜯을때는 밉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야 답이 딱 나온다.

연애하기에 진보정당은 너무 엄숙하다. 물론 결혼 상대자로는 과묵하고 책임감 있어서 생각해볼 여지가 있겠으나 중매가 아니고서야 연애를 먼저 해야 결혼도 할 것 아닌가.  한 마디로 매력이 없다. 유머도 없다. 잘생기지도 않고 심지어 돈도 없다. 이젠 자신감도 상실하고 있는 듯 하다.

난 그랬다. 이번에 안철수가 박원순이 아닌 노회찬에게 넘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동안 연애 한번 해볼만한 대중언어의 달인, 노회찬의 대중성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진보신당이 창당초기의 재기발랄함을 유지했다면 좋았을텐데.
그리고  야권통합에 진보신당이 아주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박원순 유세 뒤에 서있는 노회찬이 그렇게 애잔하게 비춰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내년 총선에 또다른 바람 덕에 진보정당의 원내진출이 좀 수월하지 않았을까.

연애에 있어 최고의 묘미는 불확실성이겠다. 정치도 물론이렸다.
이런저런 가정을 늘어논다 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좌우를 넘어 대중은 김어준, 정봉주, 홍준표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결연함, 숭고함. 무거움. 당위가 아니라 유연함, 유우머, 가벼움, 자발성의 시대가 온 것인가.

갑자기 심상정 의원에게 맘이 가는 이유는 뭘까.
머리가 아니라 정서적으로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진보정당이 되려면 비운동권 출신의 나같은 날라리가 좀 열심히 해야 할까? 머리가 복잡한 요즘이다. 진보신당 탈당한게 2주 전인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