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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정치,비겁한 거리두기

거리두기가 가능하다.
그것은 객관적, 합리적인 사람을 두고 긍정적으로 표현할때 사용한다.
상호영향을 미치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파급력이 큰 정치권력과 정치인의 관계에서
거리두기는 늘 이상적 과제로 수행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물론 시민운동과 정치운동과의 관계에서도 심오한 화두로 작용한다.
그러나, 거리두기는 긍정적이기만 한가? 알고보면 그처럼 비굴한 녀석도 없다.

D선배와 부인이 집을 방문했다.
교육감 선거가 한창이어서 당연 화두는 선거,투표,정치로 이어졌다.
그 부부는 내게, 왜 정치를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오히려 나의 남편보다 내가 더욱 훌륭하다며 추어세운다.
정치의 핵심에서 정치권력을 쥐고자 하는 정당운동가인 나의 룸메이트에 대한 예의가
아닌데. 좀 당황스럽다. 좋은뜻에서 말씀하셨겠지만
침이 마르도록 나에대한 칭찬이 이어지는데는 그들의 큰 오해가 있다.

일종의 그런 칭찬은 거리두기와 큰 관련이 있다.
절대반지를 갖고자 고통을 무릅쓰고 암벽에 달려드는 사람은
자세가 안좋네, 몸이 무겁네, 훈련을 더 해야하네, 전략이 부족하네, 등등
부족한 점이 노출된다. 일선에서 땀흘리고 노력하지만 암벽에서 미끄러져도
사람들은 왜 미끄러졌는지를 분석하고 비판할 뿐 얼른 달려가 119차에 싣지 않는다.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실패했을때, 절대반지는 개인의 욕심으로 치부되기 마련이다.
알아주길 바라고 하는 일들은 아니지만, 불쌍할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어떤가. 아예 절대반지에 관심도 없지만, 암벽타기 하는 사람들에게 응원하며 열심을 물을 날라다주는 천사같은 역할을 하지 않는가. 물론 암벽타는 수고도 필요치 않다. 날으는 익룡등에 타고 이동하면 되니깐.

거리두기는 욕먹을 일도 아니지만 칭찬받을 일도 아니다.
어느일이나, 몰입하면 주변을 돌아볼 수 없는 오류가 있고 덩달아 욕도 많이 먹게 된다. 진보정당 운동가들이 힘겨운 고통의 터널을 지나 절대반지를 손에 끼고
잠시, 좋아라 권력을 휘두르면 더큰 도덕의 심판대에 모가지를 내줘야 하는 운명도 예상된다.
난  거리두기 하며 일선에 있는 황선배에게 사사건건 문제제기를 하지만 그가 코너에 몰리거나, 혹은 이런 오해로 거리두기 하는 많은 비겁자들이 칭찬받을때 혈압이 오른다.

거리두기보다 몰입이 필요할때가 있다.
글과 입을 통해 변화시킬 수 없다면 묵묵히 서류라도 날라야 한다.
일선에서 욕먹을 각오가 필요하다.
다만, 열려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