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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기

이모작이라...

이정도면 됐다라고 판단을 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

'이 정도'라는 단어 안에는 사회적 관계에 대한 책임과, 이를 놓치지 않으려는 두려움.

아직도 욕먹지 않으려는 욕심이 내제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매번 어느정도 되어야 결단을 내리고 새삶을 살겠다고 결심만 해왔다.

그런데 그 어느정도가 세네번은 지나간 것 같다. 야속하게도 그 때는 매번 코앞으로 다가왔고

이런저런 합리화를 통해 모면해왔다.

이젠 더이상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나는 나이들어버렸고. 이젠 이모작을 준비할 때가 되었다.

 

허병섭 선배님은 옳았다.

그냥 떠났고 주변 사람들은 술렁거렸지만. 그는 옳았다.

짧지만 행복해하셨다.

 

문동환 박사님은 너무 나이드셔버렸고 꿈을 꾸지만 실현하기엔 기운이 없어보인다.

난 문 박사님의 절절한 제안을 들으며 아쉬움과 후회를 읽을 수 있었다.

나도 그럴것 같아서 두렵다.

 

나는 살고, 해석은 지식인이 하면 된다.

나는 농촌으로 내려가겠다. 이젠 도시는 아니다.

활동가도 기관에서 돈벌어야 간신히 살아지는 이곳에서 공동체는 무슨 공동체인가.

어느정도 고정수입이 있어야 살아져서, 뭔가를 해보려해도 이미 가족을 이룬 상황이라 어렵고

주변은 소비하지 않으면 사회생활을 할 수 없다.

간신히 주민운동 근처에서 산다는 것이 이리도 답답할 줄이야.

 

구체적으로 준비하려면 참 힘들거고

난 혼자서 얼마나 싸워야 할까. 난 내적힘이 있고 그걸 믿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