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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버마 여행일지

1월24일(토)
어제의 대화가 생생하다. 마음을 알아주니 그는 다시 생기를 찾았다 보다. 어렵게 맺은 인연이 어찌 '쿨함'에 이별을 담을 수 있겠는가. 머리털이 뭉텅 빠져나갔다. 그간 맘고생이며 관계유지에 든 에너지를 몽창 써버려사인가 보다. 공항버스에 오르니 남편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스멀스멀 가슴을 간지럽힌다. 자연스럽게 오고가지 못한데 대한 대가를 이런식으로 치루고 있지만 '떠남'은 언제나 설렌다.

1월25일(일)
불안정한 상황에서 여행은 늘 도피처이나 안식으르 가져다 준다. 전생에 유목민이었나? 떠나지 않음 폐쇄공포증에 걸린 사람처럼 동공이 풀린다. 보고 느끼고 떠나고 멍청하게 길을 걷고 그나라 공기를 들이마시면 나의 그간 소진된 에너지가 보충되겠지. 거리두기, 내 삶에 무거운 가족들.
비행기가 연착되어 새벽3시쯤 도착, 벤자민 호텔서 불과 서너시간만 자고 메솟행 버스를 탔다. 8시간 걸려 오후 3시께 도착. 내가 좋아하는 늦여름 바람이 분다. KNU 군인 먼데이의 차를 타고 태국 국경으로 향했다. 멜라 난민촌 캠프를 지나 모웨이 강에서 배를 타고 버마로 갔다. 불법입국.
벤땅 마켓서 식재료를 사고 래퍼허 학교 교장인 레인보우와 함께 숙소에 도착. 늦은 식사를 하고 모기장안에서 잠을 청했다. 레인보우는 KNU군인이었다. 하지만 더이상 싸움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며 래퍼허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언제 버마군 공격을 받아 불타버릴지도 모르는 공간에서 하나씩 학교건물을 늘려가고 있었다.

1월 26일(월)
래퍼허에는 279명의 학생이 있다. 기숙사에서는 89명이 생활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3시쯤 일과를 마치고 저녁준비를 했다. 먹을 것이 없어서 하루에 두끼밖에 먹지 못한다. 우리가 준비해갔던 계란과 생선통조림으로 소스를 만들었다. 시골서 살던 추억이 새록새록. 공기, 별, 산, 새벽추위, 날으는 닭, 땔감으로 밥을 짓는 모습 등. 다시 욕망과 관련한 생각이 든다. 너무 개인적인 생각에 매몰되어 고개를 털었다. 늦여름의 해질녁. 회귀본능 만땅. 하지만 아직까지 돌아가고픈 생각이 없다.
흔들침대에서 신선한 바람을 맞이한다. 또다시 개인적인 생각이...
허영심은 내가 가진 몸쓸 욕망이었다. 그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서 판단력을 잃었다. 나를 움직여 온건 저 인형처럼 욕망이라는 철사가 나를 조정한건 아닐까(우린, 기찻길옆공부방 선생님이 주신 재료로 인형만들기수업을 했다.) 내가 진정 원하는게 뭔지 모르고서 정말 관계란 어떤건지 성찰해보지도 못한채 그저 낭만적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욕망의 허상에 매달려 온거 같다. 그래서 난 눈치보고 비굴하게 이해하는척 했던 것이다. 집착은 판단력을 해치기 때문이다. 더이상 유지할 이유를 갖고 있지도 못하면서 관계의 유익함을 견져내지도 못하면서 그간 몸상하고 맘상하면서 불안정한 관계에 울고 웃었던 것이다. 잘되었다. 거리감을 유지했을 때 집착을 원거리서 헤아려볼 수 있지 않은가. 상대의 허영심을 비판하기 전에 내 허영심을 돌아봐야 겠다. 허영심을 걷어내니 관계에 남는게 없다.

1월 27일(화)
레인보우는 공격받으면 정글로 들어가겠다고 한다. 이 불안한 상황을 아이들은 알까? 6살짜리 라크뽀뽀는 연실 내 옆에 붙어있다. 인형, 학용품을 만지작 거리며 논다. 난 래퍼허 아이들에게 말을 배웠다.
안녕- 할로게
고마워- 따블로
배고파- 너베
밥먹었냐- 어윌리
이름이 뭐냐 - 너미딜레.
기숙사에서 아침식사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과 제기를 만들어서 제기차기를 했다. 7세에서 11세반에 선생님이 없어서 미술수업을 했다. 스케치북을 낱장으로 나눠죽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게 했다. 군인과 풍경을 그린 그림이 다수다. 보이스카웃 옷을 입은 이쓰 노란두건을 쓴 비자, 예쁜티셔츠를 입은 메끼리 그림을 잘그리는 씨라 고무줄 놀이를 하던 써투러크 그들과 재미난 일정을 보냈다.

절박한 상황에서 '삶'만큼 중요한게 어딨을까. 육체의 살아있음 앞에 모든것이 낯을 붉힌다. 공교롭게도 난 '니체'를 가지고 왔다. 한끼 식사도 충분히 못한 아이들 앞에 나의 정신의 '살아있음'은 무슨 의미일까? 위선적 자비의 모습이 아닌 우정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수평적 관계로 단련된 '의식' 정도? 난 니체를 펼친다. 육체를 중요시하는 아니지, 육체와 정신의 동일값을 인정한 그는 이런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보여줬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어제 상희와 현필씨 이야기가 나왔다. 버마관련 현필씨에게 도움을 요청한 생각이었으나 우습게도 그 단체 또한 어렵게 운영된다고 하니 할말은 없다. 여하튼, 참 바닥이 좁다. 바닥이 좁다기 보다 21세기는 의식이 모이는 시대라고 했으니 비슷한 의식 수준의 사람들이 의도하지 않고도 우연히 마주치는 것 아니겠는가. 이건 또 에너지와 관련한 것인가?

어느순간 총알이 날라올지 모르는 이곳의 삶이 불안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아이들은 연실 웃으며 쫑알거린다. 끊임없이 아이들은 태어나고 자라고 꿈을 키운다. 불가능한 꿈을 꿀수도 없는 아이들이 어느 대문쯤 들어섰을 때 현실을 인지하는 것인까? 그때부터 아이들은 시니컬해지겠지. 실은 나같은 이런 일회적인 손님은 반가울리 없다. 다음을 기약못하니 움츠려든다. 쉽사리 친해지고 싶지 않다. 떠나는 것에 혹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이들이 늘어나고 아예 기대없는 관계를 만들어갈 아이들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난 너희들과 정들지 않겠다. 이름따위 기억도 말길. 얼굴따위 추억도 말길. 그냥 손님이 들고났다고만 생각하길. 짧은 수업, 만남, 뭐 그정도 아닐까?

갑자기 개인적인 생각이 끼어든다. 기대에 어긋나 마음이 뜬 상황에 대한 섭섭함이 또 울컥 올라온다. 그리고 독설이 올라오고 혼자 되내인다. 말을 아끼자. 독설을 피하고 싶다. 내 기대는 나의 것. 탓하지 말것. 내가 생각한 판단만 기억할것. 더이상 멍청한 오류는 끌고 가지 말자.
니체식 판단, 자유로움은 환한 웃음과 가뿐한 걸음, 이것은 자유롭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확실한 증거다. 웃음과 걸음걸이가. 지금 이시간에도 얕은 성찰, 얕은 재미, 얕은 판단으로 잘자고 잘 먹고 잘 살겠지. 만나고 싶지 않다.

1월 28일(수)
레인보우는 어제 잡은 물고기를 튀겨 아침상에 내놓았다. 짜지만 맛있었다. 남자아이들은 행사에 쓸 대나무를 베러 가고 우린 마켓에 들러 식재료를 샀다. 배타고 다시 국경을 너머 태국으로 갔다가 다시 배타고 버마로 들어와 매써리학교로 향했다. 에크너히 선생님(선교사)이 우리를 맞이해주었고, 특이한건 미국인 수지엔느 선생님이었다. 그 여선생님은 57세로 사립학교 교사였다. 남편이 죽고 은퇴한 후 케냐와 버마를 방문했고, 남은 여생을 매써리서 보낼 예정이란다. 덕분에 어린 아이들과 간단한 영어로 소통할 수 있었다. 패왕별희의 장국영을 보는듯한 남자아이 니꼴루에와 남자같은 여자아이 문어삐가 내 가슴팍에 딱 달라붙어 떠날줄 모른다. 저녁에 다음날 아침준비를 위해 호박을 자르고, 땔감을 준비했다.

1월 29일(목)
맛난 칠리소스와 계란후라이가 인상적이다. 체포포(15세, 여)는 '너를 만나서 행복해'란 한국말을 가르쳐 달라고 한다. 그리고는 계속 너를 만나서 행복하다는 말을 되내인다. 언어의 장벽이 만만치 않다. 내가 영어를 잘했다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메써리는 기독교 문화가 잠재되어 있어 고요하고 정리정돈된 기분이다. 하지만 새벽기도와 저녁예배는 껄그럽다. 아이들이 쉴새없이 기도해야 하다니. 그것 말고는 먹을거리 풍부하고 전쟁의 위험만 없다면 이만한 곳도 없다.

어제 남편이 꿈에 출연. 그자리에 있는 모습이 처연해보인다. 약속과 의리를 중요시한 내가 '먼길을 돌아 제자리'에 가려나보다. 내 근본적인 욕망은 그리 먼곳에 있는게 아녔나 보다. 소박한 곳에 있었음을 몰랐다.

다시 나의 끈기없음 반성. 최고의 능력은 지구력이다. 매번 순간의 재미와 욕망에 담보잡힌 나의 가능성을 발굴해야 할텐데. 영어와 기타 만큼은 다시 시작해야지. 많은 돈 버렸으니 독학으로 방향을 돌리는 수밖에. 
오후에 태국군인이 온다고 해서 짐과 함께 10분 정도 숨어있었다. 6살짜리 파코타는 수영가자고 하니까 태국군인이 있을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하지만 수영했다. 꽤 깊은 물인데 수영을 잘한다. 모처럼 어린아이처럼 놀았다. 젖은 옷이 밤새 마를라나?

방황의 시간이 내게 준 선물은 무엇일까? 깨기 어렵던 가치관이 변화한것? 추억을 되새김질 하고픈 욕망의 충족? 그간 충분했다. 한여름밤의 꿈에 감사한다.
분노와 자책으로부터 고마움까지 일주일간 들끓던 갈등이 잠잠해져 가고 있다. 폭풍이 잠시 사그라들고 편안함을 위해 주변정리를 해야겠다. 갑자기 토현이 생각이 난다. 옆에 있어도 외로웠을 토현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저린다. 한참 내가 필요했을 시기. 많이 참고 기다려줘서 고맙다. 내년엔 이고즈넉한 비움의 공간에 함께 오자. 우리가 동지로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죽으면 없어질 삶. 지금 살아있는 우리가 진정 참 재미나게 살았다고 느낄 수 있으려면 풍랑을 가볍게 즐기고, 이니지 닥치지 않을 풍랑을 걱정하지 말고 오늘을 살아야 겠지.

그의 무게에 비해 내가 너무 무겁고 진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내 짐이라면 짐이지만 억지로 덜어내기 싫다. 가벼움을 흉내내기가 지친다. 가벼움을 살기가 어울리지 않은지도 모르지. 내몸에 맞는 삶속에서 변화하고 성장할 것이다. 익으면 떨어지리라. 변화와 생성을 위해. 깊이 고민하되 주저하지 말것. 결단하되 경솔하지 말것. 알것 같지만 확인하고서야 믿을것. 직관을 믿지만 삽질하지 말것. 다시 예뻐질것, 다시 생생해질것, 다시 활기를 얻고 잠잠히 준비할 것. 기다려준 모든이들 고마워.

1월 30일(금)
파코타와 니꼴루에,여전사 등등. 떠나를 우리를 배웅하려고 숙소로 몰려든다. 우리짐을 서로 하나씩 짊어지고 배까지 따라 나왔다. 마지막에 올챙이송을 부르며 니꼴루에가 눈물을 글썽인다. 나도 울컥한다. 여전사를 보니 먹먹하다. 오버하고 싶지 않아서 울음을 참았다. 먼데이의 차를 타고 메솟까지 오는 내내 아무말도 못했다. 선선한 늦여름의 바람이든, 나무든, 풍경이든, 날으는 닭이든, 내겐 온통 아이들의 마지막 모습 뿐.
방콕 플레이스 호텔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쏨얌과 맥주를 마셨다. 상희가 저녁식사를 샀다. 꽤 비싼데.
일찍 잠을 청했다. 물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1월 31일(토)
씨암스케어에 가서 맛난 점심을 먹고 주말에 열리는 시장에서 토현이 줄 지갑을 샀다. 다시 호텔근처에서 타이맛사지를 받고 짐을 챙겨 공항으로...
가족끼리 관광온 사람들을 보니 우리도 가족끼리 여행을 다녀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에 충실하고자 했으면서 함께하는 이들과 추억을 만들지 못해 미안한 맘이 든다.  내년에 다시 만나고 싶다. 래퍼허, 매써리 친구들.
그때까지 버마군의 공격이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