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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기

대청소


주말을 비우고 들어온 집은 아늑하지 않다. 왜 여자가 집을 비우면 집은 아름다운 나의 집이 아니라 더러운 나의 집이 되어 있을까. 냉이된장국엔  하얀 곰팡이가 피었다. 곰팡이를 손으로 걷어보니 냉이들이 헬쑥하다. 불쌍한 것들. 국물을 꼭 짜서 음식쓰레기 봉투에 담았다. 양배추 물김치는 시어꼬부라져서 맥없이 반찬통에 담겨져있고, 짜파게티 끓여먹은 흔적이 남은 냄비는 꺼먼 춘장기름이 둥둥 떠있다. 모두 찬물에 훌렁훌렁 헹궈서 쓰레기 봉투에 담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급격하게 온도가 높아지다보니, 털옷을 바라보는게 부담스럽다. 이참에 옷장정리좀 해야겠다 싶어 자개장을 열었다. 옷들이 쏟아진다. 그동안 숨참고 있느라 고생이 많다 애들아~. 행거에 걸려있는 겨울옷들을 털어서 차곡차곡 접었다. 무엇보다 몇년째 내몸에 걸쳐지지 못했던 오래된 옷들을 과감히 버리기로 했다. 아무리 스타일을 중요시여기기로서니 우째 이렇게 옷이 많은지. 갑작스레 옷을 구입하느라 소비한 본전생각이 굴뚝같다.이것을 돈으로 환산한면... 아니지, 모두 나의 눈길을 끌었던 매력적인 존재들이 아니었던가. 한때는 세탁기에 넣어 빠는게 아까워서 꼭 손빨래를 했던 블라우스며, 구입하자마자 입기가 아까워서 행거에 걸어두고 몇날며칠을 바라만 봤던 스커트며, 한때 운동권 티내느라 입었던 생활한복들을 싸그리 모아 헌옷통에 넣었다. 옷통으로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니 괜시리 허전하다. 도대체 너네들은 왜 매력이 떨어진거니? 10년째 항상 사랑받는 청자켓도 있는데 말이야. 목이 누렇게 변색됐어도 항상 간택되는 청자켓. 

너무 예뻐서 청자켓을 거들떠 보지 못하게 만들었던 가디건들은 불과 2년만에 버림받았다. 순간순간 눈을 뗄 수없었던 옷가지들이 아무렇지 않게 내게서 버려지고 있다니. 어떤옷은 1년도 안되서 버림을 받지만 어떤옷은 10년이 넘어도 몸에 휘감고 다닌다. 매년 철이 돌아올때마다 새록새록 정이드는 비결은 뭘까? 청자켓아~ 비결이 뭐니?

허리가 부러질거 같다. 옷에서 떨어진 먼지들로 목구멍이 아프다. 삼겹살을 먹어야 할래나? 아니지. 아직 멀었다. 때가 켜켜이 쌓이 플라스틱 세숫대야며 양동이등을 모두 내어놓았다. 베란다에 옷을 말리러 갈때마다 발에 채였는데 이참에 정리했다. 책도 정리하고 싶어졌다. 엄두가 안난다. 벌써 5시간이나 지났다. 

청소할때마다 느끼는건데 쓸데없이 짐이 너무 많다. 모두 싹 쓸어서 포크레인으로 버려버리고 싶다. 일년에 한번은 이런 충동이 생겨서 대청소를 하나보다. 책도 걍 다버리고 싶다. 사들이는 만큼 퍼내야 한다는게 평소 내 지론인데 좋은 책들은 주변사람들을 줘버려서 실상 그리 또 보고싶은 책은 별로 없다. 날잡아서 정리해야겠다.

오늘 드디어 진보신당에 가입했다. 신분때문에 당가입을 미뤄오다가 문득 더이상 미루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후배는 말린다. 때가 아니라고, 그렇잖아도 복잡한 때에 왜 가입하냐고. 사람들은 내 정체를 아는순간 이런저런 의도가 뭘까 의심하겠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난 별 의도가 없다. 지역활동을 거의 접었고, 조직본능이 좀 스멀스멀 올라와서라고나 할까? 굳이 따지자면 말이다. 입고싶지만 체형때문에 못입어왔던 탱크탑을 그저 주워입었을 뿐인걸 뭐. 그리고 내가 뭐 지역에서 그리 중요한 존재도 아니니. 재미난 모임을 만들고 즐기면 되는 거 아닌가.
'축처진 가슴올려주는 운동모임' '한강 자전거 모임' ' 독서모임' '자매애로 가득찬 젊고 독특한 남성당원들과의 만남' ' 섹시한 드레스코드로 만나는 여성당원들과의 만남'  ' 호흡곤란' 등등...

그간, 개인주의적인 나의 기질을 누르고 꼬뮨적 삶을 지향해왔다. 하지만 요즘 자꾸 홀로본능이 주먹질한다. 웃긴건 홀로본능을 혼자 해결하지 않고 꼭 이렇게 집단속에서 발현한다는 것. 그게 웃긴일이다. 조직안에서 비슷한 것들끼리 모이고자 하는 나는 뭔가.

대구빡도 대청소를 해야할 때가 왔다. 오래되고 써먹지 않는 것들은 좀 재활용통에 버려야겠다. 쓰레기로 가득찬 나의 정신세계를 싹 모아서 압축하여 버려줬음 좋겠다.

월-E 도와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