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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기본소득이 필요한 이유

나는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절실히 필요했던 순간들이 있었고 여전히 절실하다.

요즘 기본소득에 꽂혀 녹색당 기본소득선거운동본부에서 활동하는 내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쟤는 원래 시민운동하던 애니까', 혹은 '뭐 또 재밌는 일에 꽂혔군' 혹은 '좋은 일 하나보다'라는 반응이지만 내가 기본소득 덕후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따로 있다. 참말로 절실하기 때문이다.

 

나는 친척집을 전전하며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피붙이라는 이유만으로 친척 어른들은 기꺼이 나를 거뒀으나 먹이고 재우는 것 말고는 다른 지원을 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도시락을 싸달라고 조르기도 눈치보여 땅콩샌드로 때우기를 반복했고, 학비도 허덕이는 상황이라 맘씨좋은 선생님의 교사용 참고서로 공부했고 측은지심이 많은 선생님이 대납해주신 덕분에 보충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수학여행 또한 돈이 없어서 갈 수 없는 형편이었다. 고등학교시절 레스토랑 바텐더로, 공장에서 심부름을 해서 용돈을 벌기는 했으나 시집이나 소설 몇권 구입하면 똑떨어지는 정도였다. 그런데 라이온스라는 단체에서 36만원이라는 거금을 장학금으로 줬다(통장에 36만원이 찍혔고 난 지금도 그 활자가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나는 그돈으로수학여행비도 냈고 책도 사보고  친구들에게 즉석떡볶이도 사줬다.

 

만약 내게 기본소득이 있었다면 교사들의 동정어린 시선으로 유쾌함을 누르지 않아도, 친구들의 회합을 피하지 않아도, 무엇보다 읽고 싶은 책을 맘껏 향유하며 작가의 꿈을 접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나와 같은 청소년이 보통의 또래처럼 공부하고 꿈꾸며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제정운동을, 의무급식조례제정운동을, 진보교육감 선거운동을, 학교운영위원회 활동을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싶어서 하기 보다 필요해서 하는 일을 선택해야 하고, 가난을 들킬까봐 가슴졸이는 아이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때의 나처럼 말이다.

가난을 들키지 않고도, 맘씨좋은 교사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하지 않고도, 부모를 잃고도 또래의 아이처럼 살 수 있는 길, 기본소득 뿐이다.

 

나는 한 아이를 둔 엄마가 되었다. 거침없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하루에도 몇번씩 배꼽빠져라 웃는 딸을 보며 '넌 참 좋겠다'라며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그 아이가 진심 부럽다. 그렇게 니캉내캉 살아간다면 더없이 행복하련만...

나는 다시 가난한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 부모없이 살아내느라 청년기를 힘겹게 보냈는데 이젠 아픈 부모를 책임져야 한다.당뇨합병증으로 병원비와 생활비가 걱정이었지만, 엄마는 수급자가 되었다. 복잡한 가정사로 엄마의 호적엔 자식이 없어서 부양의무기준을 무사통과했기 때문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꽂혀 활발히 활동했었는데 우리엄마가 당사자가 된 셈이다.

 

그러나 나는 늘 조마조마하다. 엄마는 나를 10살까지밖에 기르지 못했음에도 어찌되었든 엄마는 엄마고 자식은 자식이니, 행여 나의 존재가 밝혀져서 탈수급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나의 사정을 아는 친구들은 '엄마가 밉지 않느냐'며 나를 대단하게 생각하지만 자식을 부양하지 않은 엄마를 돌봐야 하는 내가, 억울해하지도 서운해하지도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기초법 수급이었다.  아마 엄마가 수급자가 아니었다면 난 유년의 고통을 늙은 어미에게 책임지우며 억울함에 절망하며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리치료받으러 병원 여기저기를 다니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엄마가 수급자여서 난 본의아니게 '도인'같은 딸이 될 수 있었고 심심한 효도를 하며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딸을 딸이라 밝히기 어려운 현행 법 제도에서 나는 죄인아닌 죄인처럼 살고 있다. (내가 가진 여러가지 하자 중 하나이다)

돈없음, 자식없음, 혹은 자식의 부양능력 없음을 증명해야만 수급을 유지할 수 있는 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이렇듯 모멸감을 동반하는 제도다. 따라서 가난해도 품위를 잃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은 바로 기본소득 뿐이다.

 

나는 기본소득도입운동(?)을 한다. 내 자식과 그의 친구들이 내 아픈 유년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기본소득도입운동(?)을 한다. 내 엄마와 이땅의 노인들이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모멸감을 견디며 살아가지 않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기본소득제도가 실행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무엇보다 생존하느라 조급하고 억척스레 살아왔던 지난 삶에서 벗어나 여유있고 품위있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