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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내가꿈꾸는 세상 '증여의공동체' - 펌글

"엄밀히 말하면 ‘증여의 공동체’라는 말은 동어반복이다. 한국말 ‘공동체’에 해당하는 영어 ‘community’라는 말은 라틴어 communitas라는 말로부터 왔다. 이 말은 ‘함께’를 뜻하는 접두사 com과 ‘주다’를 뜻하는 munus라는 말이 합성되어 탄생했다.

정치철학자 에스포지토(R. Esposito)는 『코뮤니타스: 공동체의 기원과 운명』이라는 책에서 공동체(community)는 공동의 영역(the communal)에 대한 것으로 ‘나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공동체는 ‘나 자신의 것’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된다.

에스포지토는 코뮤니타스를 구성하는 말 munus를 보다 자세히 분석함으로써 이 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해명한다. 코뮤니타스를 구성하는 라틴어 munus는 세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 두 가지의 의미(onusofficium)는 ‘의무’와 ‘관청’에 해당하지만, 세 번째 의미인 donum은 증여를 뜻하며, 그것도 답례로서 무언가를 해 주어야 하는 증여를 뜻한다.

그런데 비슷한 말인 donummunus가 서로 구분되는 이유는 munus가 “주는 선물이며 받는 선물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따라서 에스포지토는 공동체를 코뮤니타스로 이해하게 된다면 “한 개인에게 속하지 않고 속할 수도 없는 선물을 계속 증여하게 만드는 호혜성”의 관점에서 사태를 바라보게 된다고 주장한다. 코뮤니타스는 그 기원에서 부재하는 선물(absent gift), 즉 어떤 구성원도 자신의 것으로 한정해 둘 수 없는 선물을 둘러싸고 구성된다.

따라서 munus를 수용한다는 것은 바로 개인으로서의 정체성(individual identity)과 자신을 동일시(identify)하거나 자신을 공동체의 일원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동체의 뿌리에는 증여가 있다. 내가 나 아닌 다른 존재에게 나라는 존재를 선사하는 관계, 그리고 남이 자신의 존재를 나에게 선사하는 관계. 말하자면 정치경제적인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의미에서도 공동체란 증여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어떤 층위를 의미한다. 어떤 것을 '공동체'라 이름할 수 있다면 그 집합을 이루는 요소들은 늘 '바깥으로' 뻗어 있어야 한다. 예컨대 '나 자신의 것'을 이야기할 때조차, 그것이 어떻게 다른 존재에 대한 '선사'가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는 이렇다"라는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선언의 의미가 '함께 존재한다' / 또는 '타인에 대해 존재한다'라는 관점에서 볼 때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관계'는 필연적으로 비-공동체적이며 고독한 것일 수밖에 없다. 이 표현이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부정적인 뉘앙스를 삭제한다면 그저 단순히 '홀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