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한하다.
슬픔이 슬픔을 덮어주고 또다른 슬픔이 어루만져준다.
지금처럼, 아니 지금보다 더 아팠던 것 같은데
그때 남긴 글과 이별의 편지가
나에게 위안이 될 줄이야.
사랑하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말이
이렇게 따뜻하게 다가올 줄이야.
그때는 분노와 슬픔이 가득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의 분노와 슬픔을 어루만져준다.
저장해놓길 참 잘했다.
대화할 수 없을 때
대상이 떠오르지 않을 때
그 문자들이 내게 말을 건네온다.
그래서 어쩌면 이렇게 슬플때
난 글을 쓰는지도 모른다.
난 한 생애를 살면서
이렇게 아픈 이별을 겹쳐서 맞이할 줄 몰랐다.
일할 때 순간 집중하고 나면
다리가 후달리고
가슴이 벌렁거려서
걸을 때 조심조심 걷는다.
그치만 이 상황이 힘들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오롯이 내가 나를 만나고
나만이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믿음이 자라나고
내면이 단단해지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존재로 살기 위해
이렇게 아픈 이별을 경험하는지 모르겠다.
난 상처로 슬펐고
난 상처를 주면서 존재를 확인한다.
무엇이 더 아프냐고 묻는다면
상처를 주면서까지 내 존재를 확인해야 하는 이 상황이 더 아프다.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모른척 살기에 내가 너무 불쌍해서 견딜 수 없다.
이런 종류의 슬픔은
누군가와 나눌 수도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그래서 난 깊은 슬픔 안에 놓여있다.
먼 훗날 요즘을 기억할 것이다.
먼 훗날 요즘을 고마워할 것이다.
먼 훗날 또 슬픔이 찾아온다면 이 글로 위안받을 것이다.
난 나의 존재로 살 것이며
나의 존재를 존중할 것이며
곧 찾아올 어떤 행복을 차분히 기다릴 것이다.
난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