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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공부

기형도 산문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니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기형도 '빈집'
 

95년도 2월4일 나는 영풍문고에서 기형도의 산문집을 샀다.
내기억으로 문학과지성사 80번째(?) 시집 '입속의 검은잎'을 읽고
그의 삶이 궁금했던 터.
오늘, 난 왜 뜬금없이 기형도의 산문집을 꺼냈을까.
기어이 한줄이 내눈에 들어오고야 만다.

ㅡ희망이란 말 그대로 욕망에 대한 그리움 -

죽은 사람을 몹시도 질투했던 그 95년도의 나는
희망을 찾는 행위를 멈춘 2008년도의 내가 되었다.

빈집은 짧고 강렬한 시다.
난 그 시를 외워서 친구들에게 낭송해주려고 했다.
매번 한두줄 뻐끔거리다 실패한다. 기억력부재.
그놈의 기억력때문에 연극도 배우에서 연출로 밀려나지 않았던가!
김기덕은 아무래도 기형도의 '빈집'이라는 시를 나처럼이나 좋아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