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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마돈나 출간/러브체인

#1

돌아보지 않던 몇년의 세월만큼이나 자개장농위에 수북한 먼지를 발견하니 소름돋는다. 돌보지 않는다는건 지저분한채로 방치한 사랑만큼이나 아찔하고 더러운기분이다.
의자를 올려놓고 팔을 최대한 뻣어 먼지를 쓱 쓸어내렸다. 먼지는 이제 원자가 아니라 두터운 지방만큼이나 덩어리져있었다.

빗자루에 뭔가 걸리는 느낌. 뭘까? 뭉툭하고 묵직한 덩어리가 걸린다. 쓰윽 밀어내니 노트한권이 툭 하고 떨어진다. 대학노트다. 20대 초반 희극도 비극으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절망의 에너지가 철철 넘쳤었다. 첫장을 펼치니 진하게 줄이 그어진 문구가 눈에 띈다.

"평탄은 행복한 자기상실, 질투는 불행한 자기주장"

어느 철학자가 한 말을 메모한 것일까. 아님 관념적인 사고로 똘똘뭉친 지난날, 뇌리에 스친 멋진멘트가 생각나서 적어놓은 것일까. 아무기억도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그 글귀는 나를 '얼음'상태로 몇분간 모든시간을 정지시켜놓았다.

엄마, 세상에 어떻게 남자끼리 결혼할수가 있지?
벌써 딸아이의 하교시간이 됐나보다. 급하게 책가방을 던지며 묻는다.
남자끼리 결혼할 수 있어. 여자끼리도. 아직까지는 남자여자가 결혼하는게 대부분이지만 말이야.
정말?
그럼 결혼할 수 있지.
그럼 말이야. 엄마는 누구고 아빠는 누구야?
역할을 나누면 되지, 소꿉놀이할때처럼 엄마는 누구, 아빠는 누구 이렇게 말이지.
그럼 우리는 엄마는 누구고, 아빠는 누구야?
글쎄, 니가 엄마라고 부르는 나는 엄마고 아빠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빠지.
근데 왜 엄마는 엄마라고 하고 아빠는 아빠라고 할까? 세상은 궁금한거 투성이라구
자, 차차 알게 될테니 밥이나 먹자.

딸아이의 질문은 '땡'하며 나를 얼음상태에서 구제해주었다. 다시 그런 일상이 시작되었다. 내가 얼음상태에 머물렀던 지난 몇개월이 스쳐간다. 먼지가 지방덩어리처럼 뭉쳐있기 전, 그러니까 고작 몇개월전, 나는 얼음 그자체였다.
아무도 '땡;하고 깨워주지 않았다면 난 그 얼음상태에서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슬프지만, '땡'은 남이해줘야 한다. 비자발적 각성, 비자발적 이성, 비자발적 현실적응, 비자발적 이별, 비자발적 슬픔, 비자발적 비극, 그리고 비자발적...
눈이 씀뻑씀뻑하다. 왈칵 쏟아질것 같은 눈물을 참느라 눈을 꿈뻑이다보면 어느새 눈은 충혈되고 살짝 통증이 동반된다. 이건아니지.

엄마, 뭐해? 탄냄새 난나구.
으응, 알았어, 이런 미역국이 졸아버렸네.

몇개월동안 잊고살았다. 평탄한 나를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던 그 사건, 그사랑,그사람을.


메모-> 복남이 출현, 갑작스런 선물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
때는-> 그녀 45세 모든게 안정적이고 평탄한 생활을 하던 그녀에게 사랑이 찾아온다.
지하철-> 순간접착네, 한방울이면 자개농, 악세서리 그자리에서 부칠수있어요.
등장인물->주병이형(성이 소씨: 늘 지켜주는 그)
                복남이(개새끼)
                옥실장(주인공친구)
                늙은사르트르(남자주인공)
                우영(남편)
                이랑(주인공)
집구조-> 옥탑방이 있는 단독주택
주제: 평탄은 행복한 자기상실이라는거, 안정적인 그녀에게 늙은 사르트르가 찾아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