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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섹스/그남자

하나도 배우지 못한 것이 없다3


사실 돌이켜보면 내가 만난 남자가 적지 않았다는걸 알 수 있다. 벌써 i까지 왔으니 말이다. 그것도 십수년전 일이니. 마치 부록같은 만남이어서 그가 제외되었나 보다. 그런데 문득 그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

아마, 숏버스라는 영화를 봐서일거다. 동성애자인 남자가 다리를 거꾸로 들어서(요가자세) 자신의 페니스를 애무하다가 사정하는 장면부터 숏버스 안에서 떼거지로 섹스하는 장면을 보면서 가슴이 울컥해졌다. 정신과 육체는 동일값이고, 결국 육체적 사랑도 정신적 사랑과 다를 바 없다는 것. 정신의 오르가즘, 육체의 오르가즘 모두를 갖추면 금상첨화겠지만 둘중의 하나가 안된다면 노력해야 하는법. 노력으로 가능한건 어쩌면 후자일지도 모를 일이다. 온전히 육체가 정신을 지배할 수 없고, 정신이 육체를 지배할수도 없다. 서로 영향을 받는 상호의존적인 관계라고나 할까.
난 I를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했다.
 
집에 걸어놓은 벽화에 푱하고 발사되어 쩍 하고 달라붙은 정액처럼 감정이 끈끈하게 흘러내린 이들과 달리 욕망에 충실해 만났던 그가 저장창고에 있는지는 의식하지 못했다. 그간 A~H까지 (게시물 사랑과 섹스/그남자/하나도배우지못할것이 없다 참조) 찐덕한 감정이 들러붙어있었기에 I의 기억이 곰팡이 피웠을 수밖에. 플라토닉 러브의 숭고함에 빠져 허우적대며 살다보니 그건 하나의 사이비 종교가 되었고 난 맹신도가 되어 내 젊음을 헌금해왔던 것이다. 그것도 통째로. 아~ 씨발~ 욕나온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생각해보니 미성년이군. 감옥에 갈뻔했네), 난 대학교 4학년생이었다. 5살 연하가 요즘은 뭐 대순가 하겠지만, 그때만 해도 엄청난 사건사고다. 남친을 군대에 보내놓고 외로움에 바닥을 긁던 나는 우연하게 고등학생 무리를 만났다. 공고 선반부. 그 무리의 아이들의 무식이 하늘을 찔렀으나 그는 유난히 말이 없었기에 나름 맘에 들었다. 내 눈빛을 느꼈는지 여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내게 친절했다.(여친이 준 팔찌도 빼서 내게 채워줬음). 10대는 오로지 섹스 생각 뿐이라더니, 몇번의 만남이 있은 후에 그는 섹스를 시도했다. 

난 머리가 복잡했다. 아직 남친이랑도 안해봤는데 해도 되나? 무엇보다 피임도구가 없는 상황에서 혈기왕성한 10대의 싱싱한 정충들이 연어처럼 내 질을 헤엄쳐서 그에 못지 않은 싱싱한 나의 난자와 만나 스파크라도 튀는 날엔... 술을 엄청 퍼마셨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이 바짝 들었다.

난 그친구의 집에서 생전처음 포르노라는 걸 봤고(너무 촌스러웠지), 몰랐던 욕망의 폭포수가 쏟아졌다. 이를 어쩐다. 고민도 많았다. 저, 무식한 친구와 일을 저지르고 나서 나는 보통스럽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아직도 사이비종교에 빠져있는 나로서 감당이 되지 않을듯 싶었다. 

삽입직전 난 몸을 밀쳐냈다. 그는 당황하며 한마디 했다. 
"왜요? 임신할까봐서요?"
"응"

우리둘은 조개가 쩍갈라져서 떨어지듯이 각자 툭하고 떨어졌다. 고작 고2의 친구 또한 머리가 복잡했을터.
하지만, 난 그가 좋았다. 순전히 헛헛함을 달래려 가볍게 만났기에 기대도 없었고 감정노동도 없었다. 어차피 공부 안하는 아이니까 심심할때 부르면 칼같이 달려오고, 부잣집 아들이어서(이상하게 나는 왜 돈많거나 잘쓰는 사람을 만날까. 의도하지 않았는데. 내가 금잔디같은 속물중의 속물처럼 보이나?) 술값, 볼링비 걱정도 없었다. 중요한건 조금 있으면 졸업하니까 이런 외도가 세상에 드러날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너무 유명인이 되어서 연락이 닿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한 것도 사실이다.(웃긴 걱정)

쪽팔리지만 난 A~I까지 성공적인 섹스를 해보지 못했다. 정말 밝히고 싶지 않은 사실이다. 유독I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건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의 코드로 만난 남자여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라, 20대 초반의 여성과 10대 후반의 남성, 뇌속엔 오로지 "하고싶다, 하고싶다, 하고싶다"로 가득차 있지 않았겠는가.

결국, 난 졸업했다. 그리고 애써 기억을 빡빡 지웠다. 돌아보고 싶지 않은 더러운 기억으로 여겨왔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사랑과 연애에 대한 가치관이 변화하면서 오히려 요즘은 그의 기억을 더 끄집어내게 된다. 성찰까지 덧입혀서 말이다.

숏버스에서는 오르가즘을 못느끼는 섹스치료사와(남편과의 정신적 유대는 깊음),SM알바와 마스터베이션으로 육체적 오르가즘을 잘 느끼나 관계에 영 서툰 예술가가 등장한다.
둘은 서로 영향을 받으며 치료를 돕다가 결국은 어느정도 성공하게 된다. 

영화는 어느게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남탓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의 정신이든 육체든 억압된 부분을 해결하고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 그 노력이 부끄럽지 않다는것을 강조한다. 난 부끄러워할 게 아니라, 정말 재미나게 즐겼어야 했다. 충분히 말이다.

그런 기회가 다시 올란지 모르겠지만, 난 친구들이나 딸래미에게 말하고 싶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