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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섹스/그남자

하나도배우지못할것이없다2

H2처럼 10대의 풋풋함을 기억하며
그리고 가장 깊고 진지했던 사랑을 기억하며



E군에게
중2때, 기억해? 넌 참 키도 크고 멋있드라. 우리보다 무려 두살이나 많았어.
거무튀튀한 몸매에 축구를 무진장 잘하던 아이였는데, 아버지와 동생을 부양하느라
이미, 삶의 무게로 늙수그레한 널 보며 가슴아팠었어.
매일아침 교문앞에서, 쉬는시간마다 복도에서 네 모습을 보느라고 많은 시간을 보냈었었던거 아니? 내 친구들은 너의 움직임을 실시간대로 보고해줬고, 난 덕분에 매번 너의 모습을 멀리서나봐 볼 수 있었어. 지독한 외사랑 이었지만 행복했어.
자전거를 가르쳐 준것도 너고, 동네깡패오빠가 낫들고 나를 찾아왔을때, 완전큰 주먹으로 날려준것도 너고, 사랑이 아픈걸 알려준 것도 너고, 사랑때문에 성적이 무려 몇십등이나 상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려준것도 너야.
힘든 유년의 기억을 지울수 있었던건 네가 있었기 때문이야.
넌, 졸업식때 큰 엿을 네게 주며 이야기 했어. "마돈나, 나같은 아이와 어울리지 마"
주먹으로 유명했던 너는 그 한마디 남기고 멀리 떠나버렸어.
하지만, 고등학교, 대학교때 네 편지는 드문드문 전달됐지.
평생동안 내가 작가가 될 수 있도록 뒷받침 하겠다며 결혼하자고 했잖아.
미안, 난 이미 너를 졸업앨범속에 고히 모셔두고 있었거등
그래서 알았어. 내욕망에 기인한 사랑이 아니라, 순수한 사랑은 언젠가 통하게 되어 있다는걸, 더불어, 사랑은 움직인다는 것도 말이야. 그리고 중요한건, 10대가 지나면 사랑에 계급이 생기고, 이성을 빌어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을...

F군에게
플라토닉 러브라면 바로 너와 나의 관계겠지? 감성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
남자고등학교 기자반 동아리와 여자고등학교 글짓기반 동아리가 전체 미팅을 했지.
이후 도서관서 우리는 공부말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
우리의 꿈과 미래, 사랑과 결혼에 대해 그때만큼 진지했던 때가 있었을까?
매일 대학생 부부가 운영하던 떡볶이 가게에서 토론에 침이 말랐지.
그리고 넌 하루종일 연습한 기타솜씨를 뽐내며 노래했어.
"마돈나는 젖주면 좋아하고 아하~ ㅎㅎㅎㅎ"
고2, 외동아들 잘키우겠다고 서울명문고로 전학시킨 부모님.
쓸쓸하고 힘들었지만, 넌 주말이면 여자고등학교 운동장으로 찾아와 나를 크게 부르곤 했어. "마돈나 어느교실에 있니?"
학교서 자율학습하는 아이들의 부러움으로 샤워하며 조우하던 그때.
정말 고마웠다. 사랑받는다는거 이런거겠지.
매일 학교앞서 기다리고, 끊임없이 책에 대해 토론하고, 편지쓰고, 노래하고, 공원서 하늘을 바라보고, 과장하지 않고 솔직했던 그때.난 내가 정말 너무 예쁜줄 알았잖아. 너땜에.고3 일년내내 연락이 끊겼어. 사랑의 편지를 보냈지만 넌 묵묵부답이었지.
그래, 사랑은 움직이니까. 나도 너를 잊고 대학생이 되었다.
한창 학교커플로 낄낄대던 대학교 3학년이 되었을때 넌 만취한채 쓴 편지를 보내왔다.
"오늘, 마돈나의 편지를 엄마의 옷장에서 무더기로 발견했다."고
정말 덤덤하게 군입대전 너와 조우했고 난 건조하게 널 보내고 말았다.
그래서 알았어. 우연의 사랑은 작은 장막으로도 식을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좀더 솔직하지 않았다면 계속 만날 수 있었을텐데. 난 제2의 방을 만들만큼 성숙하지 않았지. 그땐 연애중. 휴대폰은 왜 그때 발명되지 않은거야?

G군에게
독서실 총무는 그런거잖아요. 여자 수험생의 로망?
오빠는 왜이리 잘생기셨는지 원. 우리는 독서실 옥상서 수도없이 오빠를 도마위에 올려놓았죠. 아마 건대를 다녔던것 같아요. 언감생심 고등학교 찌질이들이 다가가기에 어려웠던 사람이었지요.  나또한 백옥같은 피부에 장동건의 눈빛을 하고 있는 오빠를 보면 가슴이 콩닥거려서 도무지 공부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전기대떨어진거 책임져욧!
거기를 드나들던 수십명의 경쟁율을 뚫고 오빠의 편지를 받았어요.
삶에 진지했던 오빠는 복잡한 가정사에 대해 털어놓은 무려 10장의 편지를 보내왔죠.
정말 로망으로 졸업할 수 있었던 그 관계를 왜 육안으로 확인하려 했는지.
전 오빠를 만났어요. 20대 중반의 사내와 이제 갓 20을 맞이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겠어요? 생전 듣도보도못한 단어들과, 아마도 학생운동하다 학교를 쉬었을 법한
뭔지모를 빨간 용어들. 오빠는 지쳤고 나에게 위안을 받으려고 했겠지요.
독서실 총무는 고3때까지, 전 이미 대학생이 되었는걸요.
이해할 수 없어서 연락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알았죠. 성장한 만큼 사랑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오빠는 나의 성장을 기다릴 만큼 성장하지 않았고 난 오빠의 빨간 용어를 무섭게만 느꼈던 애송이뿐이었죠.
스승과 제자, 스타와 팬, 존경하는 선배와 후배의 사랑은 사람 그대로의 사랑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았어요.


H군에게
정말이지 클라식하죠? 전 범우사라는 출판사 회원이었고, 시가 잡지에 실렸었죠.
당신은 국문학을 w전공하던 문학도로 내가 어느곳엔가 사는 30대 중반의 아줌마인줄 알고 편지를 보내왔어요. 전 고작 고2였는데 말이죠.
제 시를 진심으로 존경해줬던 당신.
아마 이백통 정도의 편지가 오갔을 거예요.  저의 10대와 20대를 넘어서서 순전히 각자의 철학과 시를 공유했던 그 펜팔. 아니 단지 펜팔이라고 하기엔 격이 떨어져요.
지금도 이름이 생생한 당신의 편지글은 제가 성장하는데 큰 뒷심이 되어주었어요.
날이 지나고 해가지날수록 서로의 성장을 확인하고 희노애락을 나눴죠.
당신은 복학하고 나는 대학생이 되었을 무렵 우린 만나기로 했었어요.
전, 무서워서 나가지 못했지요. 모르겠어요. 세상의 낯선남자는 온통 폭탄이라고 생각했던게지요. 당신은 대전서 서울까지 와서 헛탕을 쳤어요. 정말 사과할께요.
그리고 당신은 얼마 안가서 예쁜 나비그림과 함께 엽서를 보내주셨어요.
"전, 이제 나비를 보았답니다"라고.
전 알았죠. 당신은 사랑을 찾았다고. 아니면 결혼을 결심했거나.
사랑의 스펙트럼은 너무 다양해서 아무렇게 판단해서는 안된다는거.
앞으로 이런사랑은 꿈꿀 수 없다는거.
편지로도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는거.
생각을 투영한 글은 세대도 초월한다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