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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섹스

여자


그와 그의 부인을 만났다.
"마돈나, 제 옆에 있는 사람이 우리 마님이예요"
"안녕하세요. 저는 바깥마님이예요"
실제 그는 내게 마돈나님을 줄여서 마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뜻없이 우스개소리로 인사를 전했다.
그의 마님은 쌩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이야기는 들었지만 지금 들으니 기분이 나쁘네요"
그녀는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그와 나는 우정조차 형성되지 않은 그냥 아는 휴먼네트워크일뿐이다.
하지만 아차 싶었다.
그녀는 그를 더 많이 사랑하는 축에 속했던 것이다.
'불안'은 더많이 사랑하는 사람의 애정결핍, 혹은 더많이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의 다른이름이다.
안쓰러웠다.

큰삼촌은 60을 향해 달려간다. 여전히 잘생겼다. 외숙모 또한 여전히 불안해 한다.
그는 공무원이 되면서 하숙을 했다. 하숙집 아가씨는 그를 좋아했다. 너무 잘생겨서다.
그는 연예인이 되려고 했으나 집안의 반대로 공무원의 길로 접어들었다.
여자를 좋아하는 그는 많은 여자들의 구애를 받았다. 하숙집 아가씨는 하숙집을 오가는 여성들을 문틈에서 볼수밖에 없었다. 하나, 둘 여인들이 오가고 바뀌고 하는 세월을 보냈다.
그의 여성편력은 여성들을 불러들이기도 했지만 얼마안가 떠내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떠나지 않았다. 심지어 임신한 여인을 손수 데리고가 낙태수술을 시키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그는 외로운 시간이 찾아왔고 구력있게 기다려온 그녀와 결혼했다.
결혼후에도 그는 술만 마시면 여자들의 부축을 받고 퇴근을 했다.
그때마다 그녀는 포대기을 맨채로 그를 맞이했다. 가족들은 그의 집에 모여서 삼촌을 지탄했고 그런날 밤이면
뒤돌아서서 그녀는 삼촌의 아내로서 부족하다는 뒷다마를 깠던것 같다.

그녀는 아예 운전면허를 땄다. 그가 술을 마실때마다 직접 데리러 갔다. 택시기삭가 된 셈이다.
나이가 드니 여자들도 하나 둘 줄어들었다.
50을 넘기면서 둘은 산행도 가고 맛난것도 먹으며 여생을 즐기고 있다.
드디어 그녀의 눈가에 편안한 웃음을 찾아볼 수 있었다.
평생 '불안'을 안고 산 그녀에게 보상은 늙어버린 육체로 더이상 어쩌지 못하는 남편의 온전한 의존.

몇십년간 그녀를 지켜본 친척들은 모두들 한마디씩 한다.

"그가 그렇게 좋을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와 그를 이어온 건 '불안'이라는 밧줄이었다.
더 많이 사랑하는 그녀가 한번쯤 놓았더라면 아마 일찍이 삼촌은 그녀에게 돌아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놓아버리면 달아날까봐 노심초사 하느라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그러는 동안 삼촌은 무슨짓을 해도 이해해줄 만한 여자들은 만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옆에 있는 이 여자 빼놓고는 말이다.

평생 누구의 사랑의 대상이 되고 싶다면
잔인하게도 '불안'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을것 같다.

연인관계에서 흔히들 자신이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아님 어떤 여자나 남자에게 구애를 받았던 이야기라든지
갑자기 누가 맘에 들었다든지 하는.. 뭐랄까 둘의 관계에 그닥 도움도 되지 않고 그닥 유쾌하지도 않고 그닥 관심있게 말할 거리도 아닌 쓸데없는 멘트를 날릴때가 있다.
본능적으로 질투심을 유발하거나, 혹은 불안을 조장하여 길게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의 발현 아닐까 하는 생각이든다.

난 그의 마님도, 삼촌의 아내도 이해하지만 참 운없는 사람들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왜 하필이면 재수없게 그런 사람들을 만났느냔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