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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쥐와 이끼


인간의 욕망에 대한 댓가는 화형이었다. 사제와 뱀파이어라는 극단적인 설정이 뻔한 상징같아서 닭살이 돋았다. 하지만 박찬욱인걸 하는 기대감으로 극장을 찾았다. 너무 유행하는 옷은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 나로서는 관객이 너무 많이 들어서 너도나도 떠들어대는 영화보기를 피하는 습성이 있어서 아예 초반에 영화를 보고말겠다는 결심이 있었다.

친구의 여자를 탐한다는 내용을 김옥빈의 크로테스크하고 싸이코패스적인 외모로 덧입혀 마케팅에 성공했음은 분명하다. 내용은 대중화하기에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한석규와 내가 좋아하는 이은주가 주연한 주홍글씨처럼 인간의 욕망과 탐욕(도대체 부정적인 의미의 탐욕과 욕망의 경계는 어디란 말인가), 그리고 심판을 모티브로 전개했지만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다 보니 어느것 하나 가슴을 후벼파지 못해 아쉽다. 박감독의 세련된 문법은 가벼운 대사치기와 숨은 유머로 내용의 무거움을 걷어내려고 했으나, 작위적이다. 아니지. 이미 뱀파이어의 사랑을 다룬 렛미인을 본 나로서는 지퍼백에 담아 마시는 피나, 주사기로 빨아들이는 혈액 따위는 신선하지 못했다. 그뿐인가. 낚시줄에 걸린 귀가 찢어질때도 김기덕의 '섬'이란 영화에서 혀에 꽂힌 낚시줄보다 충격적이지 않아 심심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임을 가장 충실하게 실천하는 감독은 박찬욱이다. 부정적 의미에서가 아니다. 영화라는 장르로 작품을 백배쯤 멋있게 만들어낼 줄 아는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올드보이'와 '공동경비구역 JSA'가  그랬다. 하지만 그가 직접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데는 좀 무리가 있는듯 싶다. 삼인조, 친절한 금자씨, 박쥐까지(박쥐는 원작이 있다고는 하나 원작과 내용의 겹치는 부분이 많지는 않다고함). 성에 차지 않는다.

다시 박쥐로 돌아가면 말이다. 송강호 캐스팅 미스, 인간이 만들어낸 도덕과 윤리관에 대한 고민이 깊지 않았다는것. 영생의 욕망이 헛된 신앙으로 발현된다는 강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밀양'처럼 강한 여운을 남겨주지 않았다는것. 죽는 장면, 섹스장면, 그닥 화끈하지 않았다는것.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대중을 너무 의식하면 만들다보니, 이미 수준높아진 대중이 얼마안가 외면할 수 도 있겠다는 우려가 있다.
아~ 봉준호의 '마더'를 기다리며 이 헛헛함을 달랠 뿐이다.

다음에 연재하고 있는 윤태호의 '이끼'를 오늘 한꺼번에 봐버렸다. 틈새시간을 노려서 하루에 10편정도씩만 보려고 했는데 그놈의 긴장감 때문에 낮시간이 후딱 지나가고 말았다. 긴장, 서스펜스, 스릴, 모두 버무려져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윤태호란 사람, 참, 그림도 그림이거니와 스토리가 압권이다. 회를 거듭해도 거듭해도 짐작할 수 없는 이야기가 이어지고 파편화된 인물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구성력에 입이 쩍 벌어진다.

그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낸다. 더 자세히 쓰고 싶지 않다. 아직도 계속되는 윤태호의 만화는 직접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