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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기

내가 생각하는 도덕?

관계에 있어서 거짓말은 약이 되기도 한다. 솔직해서 상대방에게 상처주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이런경우. 난 후배에게 머리털이 빠져서 고민이라고 말했다. 후배는 진지한 표정으로 "비구니 보다는 낫잖아요?" 한다. 살짝쿵 거짓말 했드라면 좋았을 걸. 이렇게 말이다. "아직 괜찮아요"

하지만 관계로 얽힌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정도의 행위를 했을 때, 아니면, 사회적 규율에 어긋나는 행위를 했을 때,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는 아주 복잡하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자유를 행사하지 않고 그저 군중에 휩쓸리고 그들에게 순응하는 것은 잘못이다. 여기서 자유란, 자신의 방식대로 사회적 맥락을 만들 수 있는 자유다. 결국,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인가가 첫번째 과제. 그리고 솔직해서 상처를 주더라고 책임의 방식을 솔직함으로 가져갈 것인가가 두번째 과제다.

난, 관계에 책임지는 것이 내 방식으로의 도덕성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솔직함을 선택했다. 며칠을 고뇌한 끝에 '자유롭도록 운명지어진 존재'라는 사르트르의 귀뜸에 힘입어 말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삽질이란 걸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무리 강한 전파를 날려봐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그저 허공을 향해 떠드는 TV소리와 다를게 뭐가 있단 말인가. 그는 말한다. "시나리오 쓰고 있구만"
틀린 말은 아니지. 난, 드라마 작가 공부를 하고 있으니.

지붕뚫고 하이킥도 아니고. 이 상황에서 웃음만 나온다.

시내에 나가니 눈이 부시다. 조증이다.
극본 공모에 떨어졌다.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다. 이력서 서류전형도 떨어졌다. 근데 이상하게 안심이 된다.
마지막 보루인 보험도 해약했다. 집에 쌓인 고지서 뭉치를 보니 한숨이 나오지만 그리 암담하지 않다. 역시 조증때문인가? 하지만, 슬슬, 내 존재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한다. 별 볼일 없는 인간이라는거. 잘하는 것도 없고, 인간성도 더럽고, 잘난척에 재수없는 말만 쏟아내고, 인내심 없고, 눈앞에 있는 이익에만 급급하고... 한때, 겸손하라는 신의 뜻이라고 합리화했었다. 내 성격에 잘나가는 집안에 태어나서 능력까지 좋고 이쁘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상처주며 살았을까 하는... 그치만, 지금은. 상처받을 사람 아무도 없으니 제발, 사람구실 좀 하게 해주세욤--

일단, 오늘은 조증이다.
조증이 오래갔음 한다. 그래야 책이라도 기분좋게 읽지.
콩나물 팍팍 무치고, 냉이와 버섯 무침, 감자베이컨 볶음과 돼지고기 김치찌게를 끓여놓으니 식탁이 풍성하다.
내가 조증이면 좋은 사람 참 많다.